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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아시아연대
Subject  
   아랍세계의 증오
아랍세계의 증오
“눈 하나에 열 개의 눈을!”
  
전쟁 시의 정보는 평화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분쟁들은 정보의 평소 결점들을 크게 보이게 하는 확대경과도 같다. 이스라엘 공세의 ‘불균형’에 대한 토론은, 프랑스에서 인종차별에 희생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근동에서 전투에 희생당하는 자들을 서열 짓는 ‘두 개의 무게, 두 개의 조치’라는 습관적 경향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한 메소포타미아실 가운데에 높이 2미터 이상의 현무암을 된 거대한 조각이 서 있다. 기원전 1730년경에 제작된 것이다. 조각의 상단에는 태양의 신이자 법률을 상징하는 샤마슈가 함무라비 왕과 함께하고 있다. 조각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법률 중 하나를 보여준다. 설형문자로 편찬된 법률들 중에는 죄와 벌 사이의 상관관계를 역설하는 그 유명한 함무라비법도 들어있다.

이러한 원칙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구약은 레위기 24장17-22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남의 목숨을 끊은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짐승의 목숨을 끊은 자는 산 짐승으로 보상하여야 한다. 누구든지 같은 동족에게 상처를 입힌 자에게는 같은 상처를 입혀 주어라. 사지를 꺾은 것은 사지를 꺾는 것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이렇게 남에게 상처를 입힌 만큼 자신도 상처를 입어야 한다.” 하지만 보다 멀리, 레위기 19장18절에서는 “동족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말라”면서 화해를 권고한다.

신약의 마태복음 5장38-42절에서는 예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면서 함무라비법과 노골적으로 정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난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아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 반면 코란은 2장 17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망설인다. “살인을 했을 경우 자유인이면 자유인을, 노예면 노예를, 여인이면 여인을 죽이라고 보복법은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죽임을 당한 자의 형제가 그 죄를 다소 감해 줄 마음이 있다면 보복의 대가를 공정하게 요구해야 하며, 죽인 자는 그것을 아낌없이 지불해야 한다.”

사람들은 에후드 올메르트와 아미르 페레츠가 피비린내 나는 만큼이나 비생산적인 전쟁의 유한책임사원 자격으로 역사 속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다. 그들은 어쨌거나 성서 표현보다 더 끔찍한, “눈 하나에 열 개 눈을, 이 하나에 열 개 이를”이라는 버전을 고안해냈다. ‘여름비’와 ‘항로 변경’이라는 시적인 제목이 붙은 작전들이 160명의 이스라엘 사람들(대다수가 군인들)과 1400명의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절대 다수가 민간인들)의 생명을 앗아갔기 때문인데, 이 숫자에 80명(헤즈볼라 추산)에서 500명(이스라엘 쪽 통계)으로 추정되는 헤즈볼라 쪽의 인명 피해를 추가할 수 있다.(1) 비율로 따져볼 때 약 1000명의 이스라엘 쪽 사망자와 4300명의 팔레스타인 사망자를 낸 제2차 인티파다와 그로 인한 진압을 능가하는 이러한 수치는 “한 이스라엘인의 목숨이 한 아랍인의 목숨보다 그들 눈에 열 배나 더 소중한 것일까?”하는 무시무시한 질문을 던져보게 만든다. 양심을 ‘파는’ 책임을 떠맡은 외판사원들은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비대칭적인’ 분쟁의 특징을 이루는 죽음 앞에서의 이러한 불평등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자들의 아킬레스건을 의미한다.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그 사실을 절감하면서 7월 20일자 <르 푸앵> 지의 ‘블록노트’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완전히 무시 받으며 게다가 부정되기조차 하는 가운데, 테러리스트 특공대가 우리 땅, 우리 영토에서 프랑스 군인을 납치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는 불균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2) 앙드레 글뤼크스만은 반격하는 방식을 택한다. “분노를 느끼는 많은 자들의 분노가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일부 무슬림들의 죽음은 깃털 하나의 무게가 나가고, 다른 죽음들은 수 톤의 무게가 나간다. ‘두 개의 무게, 두 개의 조치’(3)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가나(Cana)에서의 죽음을 둘러싼 소음을 이라크, 체첸공화국 및 다르푸르에서의 죽음에 대한 침묵과 대립시키고 있다.

그러나 후자의 죽음에 대한 대부분 매체의 무관심이 그들이 전자의 죽음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정당화시키는 것일까? 모두가 이스라엘 전쟁을 지지했던 로맹 구필, 클로드 란츠만, 베르나르-앙리 레비와 함께 1999년 다음 내용을 담고 있는 호소문에 서명했던 앙드레 글뤼크스만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물론 우리는 테러리즘을 규탄한다. 하지만 민간인들에게 폭격을 가하며 테러리스트를 몰아낼 수는 없다.”(4) 반면 삼중의 제거 속에서 전쟁의 열쇠를 찾아냈다고 주장하는 ‘현대의 말로(성인전 작가에 따라 ‘현대의 사르트르’ 혹은 ‘현대의 토크빌’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글뤼크스만은, 야세르 아라파트의 표현을 빌자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화산’이 50여 년 전부터 반복해서 폭발한 사실을 짐짓 모르는 체하고 있다. 1948년, 1956년, 1967년, 1973년, 1982년, 두 개의 인티파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레바논 내란과 두 번에 걸친 이라크 전쟁이 그것이다.

모든 인질의 억류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6월 29일에 벌어질 34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장관들과 국회의원들의 대량 검거가 아니라 그로부터 4일 전인 6월 25일에 이루어진 질라드 샬리트 병사의 납치를, 또 8월초 입법회의 의장의 체포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레바논이라는 두 개 지역의 모든 주민 및 자기 나라 북부 주민들을 인질로 삼기 위해 헤즈볼라 소속 두 명의 죄수를 활용하지 않았던가? 세 명의 병사가 포로 교환 혜택을 보게 될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서 말이다. 이스라엘은 6월말과 7월 중순 포로 교환을 거절했다. 반면 레바논 사람들은 자기 쪽 사망자들을 애도하고, 90만 명에 달하는 피난민들은 자기 집으로 되돌아오자마자 황폐해진 자신들 국가를 재건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대다수의 텔레비전, 라디오 및 신문들은 이러한 완곡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싫증이 나도록 구사했다. 세 명의 이스라엘 인질들에 대해 측은한 마음이 생긴 사람들 중 그 누구나 1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포로들을 무시할 수 있을까? 그중 6백 명이 7월에 체포된 사람들이다.(5) 휴먼 라이츠 워치가 확인한 바와 같이, 헤즈볼라가 자신들 로켓포 일부를 치명상을 입히는 총탄들로 채웠다는 사실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파편, 인 혹은 농축우라늄 폭탄 사용을 허용해줄까?(6) 민간인 표적과 군사 표적을 구분하지 않는 것은 ‘전쟁 범죄’를 구성한다고 엄숙하게 선언하면서 비정부기구 휴먼 라이츠 워치는 “이스라엘 공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헤즈볼라가 민간인들을 방패막이로 동원한 사례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명시한다. “전투원들이 로켓 발사기를 인구 밀집지역이나 유엔 감시단원들 근처에 설치”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군대가 군사력의 맹목적이고도 지속적인 사용을 통해 수많은 민간인들 목숨을 앗아간 사실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7) 건물, 도로, 교량, 항구, 공항, 발전소, 공장 등 시돈 지역의 하부구조를 파괴한 이스라엘 방식의 ‘불, 철, 강철, 피의 홍수’를 정당화하면서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에서 초래한 손실에 대해 비통해하는 모습은 과연 신뢰할 만한가? 한쪽에서는 전쟁 비용이 10억 달러라고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6-10억 달러라고 말한다.

파블로프식의 정신 반사 보복심리

‘두 개의 무게 두 개의 조치’라는 논리는 근동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프랑스 정치계, 언론인들, 수많은 프랑스인 사이에서도 그러한 논리는 때때로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파블로프식인 정신 반사가 되었다. 그리고 많은 다른 주제들에서도 그러한 방식이 작동되고 있다.

얀 할리미와 샤히브 제하프 사건들이 그것을 입증한다. 23세 나이의 얀 할리미는 2006년 2월 13일 오-드-센 지방의 바뇌에서 감금당하고 고문을 당한 후 시체로 발견되었다. 희생자의 신분과 간수들의 말을 종합해볼 때, 살인에 반유대주의가 관련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주요 부처들, 교회, 정당들 및 매체들은 들끓기 시작했다. 2월 26일 파리에서 벌어진 시위에는 5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동참했다. 6일 후, 이번에는 론 지방 울랭에서 42세 난 샤히브 제하프가 세 발의 총성에 사망했다. 동일한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 경우 역시 살인에 인종차별주의가 개입한 흔적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얀 할리미에 애도를 표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침묵을 지켰다. 3주가 지나서야 겨우 2천 명의 사람들이 리용에서 시위를 벌였고, SOS-라시슴이 프랑스의 담벽들에 “울랭에서 사망한 아랍인, 파리에서 숨을 거둔 유대인, 암살당한 두 명의 우리 친구들”이라는 포스터를 부착했을 따름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예외적이지 않으며, 프랑스에서 자행되는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대한 대부분의 코멘트를 특징짓는다. 2000년부터 2002년 사이기간에 유대인에 대한 폭력행위가 여타 행위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덜 빠르게 증가했거나, 혹은 2005년 경우처럼 더 빠르게 감소했다고 믿겨졌다. 국가인권위원회(CNCDH)는 그것을 명백히 묘사하고 있다.(8) 반면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아랍인 반대 및 이슬람 혐오 성격을 띤 인종차별주의가 양적으로 팽창한 사실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유대주의의 주변화와 9.11 사태 이후 아랍인과 무슬림에 반대하는 편견들의 재발이 서로 대조를 보이고 있는 질적 차원의 문제를 경시하고 있다. 90%의 프랑스인들은 유대인이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되는데 동의하고 있는 반면, 단지 36%의 프랑스인들만이 무슬림 후보자에게 표를 찍겠다고 대답했다.(9)

국가인권위원회의 2006년 보고서 작성을 위해 실시된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프랑스인 3명 중 1명이 스스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답하고 있다. 이 수치는 2004년보다 8% 늘어난 수치이다. 그들 중 63%(2004년보다 5% 증가)는 “일부 행동들이 때때로 인종차별주의적인 반응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여론조사에 응한 자들은 인종차별주의의 대상으로 우선 ‘북아프리카인’ 및 ‘무슬림’(42%), 그 다음으로 ‘외국인들’과 ‘이민자들’(26%), ‘아프리카인들’과 ‘흑인들’(17%), 프랑스인들(12%), ‘유대인들’(6%), 그리고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6%)이었다.

상이한 인종차별주의에 서열 매기기를 계속하는 일은 그것들 각각의 온상을 마련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전투 그룹 및 사설 용병에 관련된’ 1936년 1월 10일자 법령에 따라 트리부 카(Tribu Ka)를 최근 해체시켰을 때 드러난 반응이 입증하듯, 일부사람들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의 법령은 ‘인종적 차별과 증오, 폭력을 정당화시키고 조장하려는 사상과 이론의 유포’(10)를 정확히 언급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활동이 금지되었으며, 이스라엘에서는 카흐 정당의 형태를 하고 있는 유대수호연맹 같이 아직 해체되지 않은 또 다른 소그룹들도 특징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베타르와 심지어 법정 내부에서 이 단체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정의로운 평화를 지지하는 자들에 대해 공격을 가한 사실을 더 이상 염두에 두지 않는다.(11) 누가 이러한 모순을 지적했던가?

혼란스러운 또 다른 사건이 있다. 최초고용계약제(CPE)에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진 다음날, <뤼마니테> 지는 법정으로부터 ‘줄줄이’ 유죄를 선고받은 시위가담자들에 대해 사면 청원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위가담자들은 7월 14일 대통령의 사면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작년 겨울 교외에서 폭동이 벌어졌을 당시 부당하게 처벌된 수백 명 젊은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왜 아무도 비슷한 일을 주도하지 않았던 것일까?

사람들은 이것이 이데올로기적인 토론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기는 하다. 특히 ‘두 개의 무게, 두개의 조치’에 대한 집요한 거부는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의 분쟁에 대한 모든 평화적 해결을 결정짓는다. 침략에는 또 다른 동기들도 작용했지만,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559호 결의안을 적용시킬 능력이 없는 베이루트가 사건을 얼버무리려든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선언에 열광한 국제사회는 자신의 놀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하지만 난생 처음으로 텔아비브가 유엔 결의안들을 존중하는 척했던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유엔 안보이사회 및 총회 결의안들(12)을 마침내 적용시키려든다면 할 일이 많을 것이다. 1947년 11월 29일의 181호는 팔레스타인을 하나는 유대 국가, 다른 하나는 아랍 국가로 ‘분할’하는 내용을 결정했다. 1948년 12월 11일의 191호는 피난민들의 ‘귀환 권리’를 설정한다. 1967년 11월 22일의 242호는 “확실하고도 인정된 국경 내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인정하는 대가로 “점령한 땅에서 이스라엘 군대의 철수”를 권고하고 있다. 1974년 11월 22일의 3226호는 “팔레스타인 국민의 주권과 민족적 독립에 대한 권리”를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최근 채택된 3개 결의안을 잊지 않고 있다. 2002년 3월 12일 유엔 안보이사회 결의안 1397호는 “확실하고 인정받은 국경을 나란히 하고서 함께 살아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개 국가에 대한 견해”를 1947년 이후 처음으로 피력하고 있다. 2004년 7월 20일의 유엔 총회 결의안(A/RES/ES-10/15)은 웨스트뱅크에 세워진 장벽을 허물라고 요구하는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당연히, 2006년 여름의 전쟁을 종식시키게 만든 안보이사회의 8월 11일 결의안 1701호가 있다.


(1)모든 수치는 8월 14일 AFP가 발표한 것이다. 베첼렘 이스라엘협회는 2006년 7월이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2002년 4월 이후 벌어진 사건들 중 가장 많은 희생을 낳은 달이라고 평가한다.
(www.btselem.org/english/firearms/20060803_Civilians_killed_in_Gaza.asp)
(2)‘납치(kidnapper)’란 용어의 사용을 주목하자. 그들의 “단정치 못한” 외양이 스페인 “청년 공화파 대대의 유쾌한 소란스러움”을 떠오르게 하면서 베르나르-앙리 레비를 감탄시켰을지라도(<르 몽드>, 2006년 7월 27일자), 이 병사들은 어린이들이 아니었다. 기이하게도, 클로드 란츠만 역시 <르 몽드>에 게재한 자신의 정치적 주장 속에서 동일한 표현을 구사하고 있다.(<르 몽드>, 2006년 8월 3일자 참조)
(3)<르 피가로>, 2006년 8월 8일자.
(4)<르 피가로>, 1999년 11월 15일자.
(5)World War 4 Report, 2006년 7월 31일.
(6)cf. <더 뉴욕 타임스>, 2006년 7월 25일자 및 www.fair.org/index.php?page=2931
(7)cf. http://hrw.org/reports/2006/lebanon0806
(8)2001년부터 2006년까지의 보고서들을 참조할 것. www.commission-droits-homme.fr
(9)논나 메이어(Nonna Mayer)의 「프랑스는 반유대주의 국가가 아니다」, <르 몽드>, 2002년 4월 4일자 및 Artenice Consulting이 2004년 4월 실시한 ‘프랑스의 이슬람’에 대한 조사를 참조할 것.
(10)AFP, 2006년 7월 29일.
(11) 다음 사이트에 요약본이 올라가 있다.
www.communautarisme.net/Extremisme-pro-islaelien-les-principaux-faits-imputes_a298.html
(12)www.un.org/Depts/dpa/qpal 사이트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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