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x_header




179
  
Name  
   아시아연대
Subject  
   “미군들의 학살도 법정에 세워야”
“미군들의 학살도 법정에 세워야”

‘킬링필드’의 또 다른 핵심인물 키우 삼판 전 대통령… 국제법정 서면 <한겨레21>에 말한 대로 답변할 것

▣ 파일린=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온 세상이 말라붙었다. 땅도 호수도 하늘도 모조리 말라 비틀어졌다. 잡초마저 시들어버린 대지는 작품 없는 미술관처럼 불안하고 허전했다. 그 땅에 서 있는 것이라곤 가뭄을 타지 않는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 간판뿐이었다.

마음도 타들어갔다. 좀체 입을 열지 않고 어쩌다 입을 열어도 인사치레 몇 마디가 다인 늙은이로 소문난 키우 삼판(Khieu Samphan) 민주캄푸치아 전 대통령을 잡고자 수많은 기자들이 매달렸지만, 지금껏 별 신통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아침저녁으로 그이 집을 들락거리며 ‘적’이 아님을 이해시키려고 애썼다. 그 사이 건진 건,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굴과 생선을 좋아하는 그이 식성과 엄청나게 몸을 사리는 성격을 알아낸 정도였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그이 마음이 열린 틈을 잽싸게 비집고 들어가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조심했다. 다 익은 홍시를 입술 앞에서 터트릴 수 없다는 생각에 갖은 ‘애교’를 부리면서. 그렇다고 어물게 넘어갈 일도 아니었다. 한때 캄보디아 최고 지식인으로 불렸던 그이는 여전히 자신을 ‘지성인’이라 생각했고, 한마디 한마디 빈틈이 없었다. 그리하여 신중하고 사려 깊은 화술에 ‘타격’을 가하고자 피 말리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캄보디아 독립을 생각했던 것 뿐

건강은 어떤가?

혈압이 좀 높지만 괜찮은 편이다. 눈꺼풀이 처지면서 눈썹이 자꾸 눈을 찔러 다시 수술 받을 생각인데…. 전에 짠타부리(타이 국경도시)에서 치료받은 게 신통찮아서.

역사에 대해 한수 배웠으면 하니, 몇 가지만(취재노트를 펼친다).

(손을 크게 저으며) 적지 말게. 강의도 아니고 선생도 아니니.

(펜을 내리며) 뭐 그리 겁날 게 있나. 여하튼, 파리 유학 시절 공산주의 운동했던 것부터….

운동을 했다고 할 수도 없어. 캄보디아 독립을 생각했던 것뿐이야. 1950년대 파리로 가기 전에는 일본이 캄보디아를 해방시킨다고 믿었는데(크게 한판 웃고), 거기서 알제리, 튀니지 같은 식민지에서 온 학생들을 만나 세상에 눈을 뜬 거지.

프랑스공산당에 가입까지 했는데도?

그냥 가입만 했던 거야. 파리에 먼저 온 선배인 폴 포트(Pol Pot), 이엥 사리(Ieng Sary)를 비롯해 동기인 키우 코마르(Khieu Komar) 같은 이들이 좋아서. 난 그 시절 장학금 받은 걸로 밥값 대느라 바빴어. 또 공산당 여학생들이 예쁘다고 소문난 것도 한몫했고…. (웃음판을 틈타 대놓고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이는 여전히 손을 저었지만.)

그들은 모두 유명한 마르크시스트였고 1950년대는 동구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프랑스공산당이 가장 적극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던 시절이었는데, 당신도?

신참이었던 난 그 무렵 정치적 이념이 없었어. 이것저것 이해하려고 했을 뿐. 일본 메이지유신에서 암시를 받았고, 중국 협동조합 금융제도에서 영감을 얻긴 했지만….

신기하다. 그 시절 그 분위기에서 공산당에 가입까지 하고서도 정치적 이념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어쨌든, 1959년 유학을 마치고 프놈펜으로 돌아와서 발행한 그 신문() 말인데, 그 사건이 정치판에 끼어드는 계기가 됐나?

(1960년 우익정권은 좌익신문()을 발행한 키우 삼판을 체포해 발가벗긴 그의 사진을 대중 앞에 공개하는 치욕적인 창피를 준 뒤 신문을 폐간시켰다.)

아, 그건 격주로 한 1천부쯤 찍었던 불어 신문이지. 노로돔 시아누크(Norodom Sihanouk) 왕자의 ‘반식민주의’와 ‘중립노선’을 지원하면서 내 성실성과 헌신성을 증명하고자 했는데, 경찰이란 놈들이…. 정치 입문은 그것과는 상관없고, 사회가 내 청렴성을 필요로 했던 거지. (실제로 그 청렴성만은 대체로 인정받는 편이고, 그래서인지 일흔셋의 나이치고는 얼굴이 참 맑다. 거기에다 대고 ‘혁명’이나 ‘킬링필드’를 캐묻는 일이 어색할 정도로.)
비서도 없는 대통령을 봤나?

1962년 처음 의회에 진출한 뒤 곧 통상부 장관이 되었는데, 뭘 했나?

칸달(Kandal)주 사앙(Saang)에서 선출된 다음 노로돔 칸톨(Norodom Kantol) 왕자 정부에서 무역을 맡았지. 내 박사학위 논문 주제이기도 한, 캄보디아의 불균형 외환거래 관계를 해소하려고 애썼어. 당시 캄보디아 경제는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걸로는 경제구조 개선도 경제적 독립도 불가능하다고 믿었거든.

그로부터 40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다. 정부 예산마저 외국 원조에 의존하는 실정인데, 당신의 청년 시절 꿈과 비교해볼 때 ‘역사의 진보’를 얘기할 수 있겠나?


역사의 진보? 그 주제에 크게 실망했어. 파리협정(Paris Accord)이라는 정치적 사안도, 또 균형과 자주정책이라는 사회·경제적 주제도 모두 실현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으니.

1975년 혁명에 성공한 민주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 시절을 말해보자. 무역·화폐통용 금지 같은 극단적인 ‘공상적 사회주의’로 결판난 민주캄푸치아(흔히 ‘크메르루주’로 부르는)를 놓고 업적과 실정을 구분할 수 있겠나?


역사에서 완전한 것은 없다. 민주캄푸치아는 양면성을 지녔다. 밝은 면은 농업중심 사회인 캄보디아에서 농민을 조직해 국가의 독립성을 지켜냈다는 점이다. 1973~75년의 성공적인 투쟁은 역사가 증명한다. 근데 1975년 정부가 수립되고부터는 어둠이 깔렸다. 사회를 운영할 준비를 제대로 못한 채 집권한 탓이다. 우린 집권하기 전 프놈펜 시민 이주라든지 학살 같은 일들을 상상해본 적도 없다. 또 당시 나는 정책결정권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했다고? 비록 당신이 발뺌해왔지만 한 국가를 대표했고 또 캄보디아공산당(CPK) 중앙위원이기도 했다.


캄보디아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최고결정기구가 아니었다. 중앙위원회 안에 별도로 폴 포트, 이엥 사리, 눈 체아(Noun Chea), 타 목(Ta Mok) 온 웨트(Vorn Vet), 소 핌(So Phim), 님 로스(Nhim Ros), 손 센(Son Sen) 그렇게 8명이 ‘정치상임국’을 설치해 모든 결정을 그곳에서 내렸다.

그러면 현재 살아 있는 정치상임국 위원은 눈 체아, 타 목, 이엥 사리인데, 그이들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인가? 당시 국가 수반(대통령)이었던 당신은 빠지겠다는 뜻인가?


내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진다. 난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다(미간을 찡그린다).

사실 당신이 주장해온 ‘의전용 대통령’이었단 말도 문제가 있다. 누가 뭐래도 당신은 민주캄푸치아의 이상향을 그린 ‘설계자’였다.


난 외국 정치 지도자들이 프놈펜을 방문하면 양복 입고 나가서 맞이하는 역할만 했다. 행사가 끝나면 사무실로 돌아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업무를 봤다. 비서도 한명 없는 대통령을 봤나? 난 그저 정치상임국이 보내온 문건을 다듬는 게 다였다. 그런 내게 어떤 책임을 묻겠다고? 지금까지 내가 책임져야 할 만한 어떤 증거도 찾아낸 게 없지 않은가?

1988년까지 학살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러면 민주캄푸치아가 얼마나 죽였고,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일이 벌어졌나?

여기 파일린으로 오기 전(1998년)까지만 해도 난 그런 학살이 있었는지 몰랐다. 그러니 누가 왜 학살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 중요했던 시절, 그 중요했던 일들을 최고 지도자가 정말 몰랐다고 해도 되나?

정말이다. 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몰랐다. 참으로 유감이다.

모른다니, 그만하고 요즘 세상으로 돌아와보자.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민주캄푸치아의 학살을 국제재판에 회부하기로 합의했는데, 심정이 어떤가?

난 국제재판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그이들 일일 뿐이다. 난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국제재판은 당신을 핵심 인물로 기소할 분위기인데?

주권을 지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인데,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건가?

그건 당신 생각일 뿐, 현실적으로 당신은 기소를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국제사회의 힘을 내가 어떻게 거부하겠냐마는, 뭐가 정의인지는 꼭 따져야 한다.

뭐가 정의인가?

국가 독립 문제가 걸린 상황, 그런 전쟁 상태에서 어떻게 ‘인권’만 강조할 수 있나? 그런 완벽한 역사가 대체 어디 있나? 인권과 주권 가운데 어느 게 중요한가?

학살을 인정한다는 뜻인가?

학살은 이미 역사다. 현실 속에서 그 역사를 판단하는 기준을 말하는 거다.

만약 국제법정에 서게 되면 무슨 말을 할 건가?

날 기소한다면, 지금 내가 당신한테 한 말들을 법정에서 그대로 다시 할 것이다.

중요한 대목이다. 당신의 법정 진술이 공개될 가능성이 희박한데다, 미국이 쥐고 흔드는 언론을 통해 왜곡될 게 뻔하다. 이래도 못 적게 할 건가? (이미 눈치껏 기록해왔지만.)

적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언론을 통해 내가 핵심 인물로 거론되는 게 싫어서다.

그건 착각이다. 이런 보도가 나가든 말든, 이미 당신은 핵심 인물로 찍혀 있다. 피할 생각 말고 옳다면 적극적으로 밝혀야 한다. 기사 하나로 당신을 기소하고 말고 하지도 않는다.

언론을 믿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말하는 게 국제언론이다.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미국에 말려든 이런 ‘반쪽짜리’ 국제재판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현실을 정확히 봐야 한다. 숨겠다는 건, 당신이 경험해온 ‘밀림식 사고’일 뿐이다.
(한참 동안 말이 없다. 불쾌한 듯 얼굴도 붉어졌다.) 그래, 사실은 나 자신을 너무 구석으로 몰았다는 생각이 들긴 해.
말이 난 김에, 미군이 저지른 캄보디아 양민학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래서 내가 ‘정의’를 물었던 거야. 민주캄푸치아를 법정에 세우겠다면 미군의 민간인학살도 똑같이 법정에 세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야 해. 그게 정의지.

프놈펜에서 듣자니, 훈 센 총리가 당신을 포함한 관련자들에게 입을 열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이와의 관계는 어떤가?

그런 일은 없었고, 관계도 그저 그렇다. 아마 훈 센 총리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은데?

훈 센 총리의 측근에게 들으니, 지난 총선 때 훈 센 총리를 비롯한 여러 정당들이 당신을 끌어들이려고 했다던데, 사실인가?

(망설이다) 내가 청렴하다고 소문나서 그랬는가 본데(크게 웃고), 사실은 훈 센 총리의 캄보디아인민당과 야당인 삼라인시당(Sam Rainsy Party)에서 내게 사람을 몇 차례 보내 의사를 물어왔어. 근데 내가 그 제의를 거부했던 거야.

여당과 야당이 모두 손짓

캄보디아 정치판도 참 대단하다. 국제사회가 ‘학살자’로 기소하려는 당신을 끌어들여서라도 선거에서 이기려고 했으니. 아무튼, 이제 남은 건 국제재판 날짜를 잡는 일뿐이고, 거기 걸려들면 감방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데 마지막 꿈이 있을 법도?

우리 캄보디아가 정치·경제적으로 ‘완전한’ 아세안(Asean)의 일원이 되고, 국민들이 킬링필드를 잊고 이제 미래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 좋은데, 뭘 알고 잊어도 잊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사람들에게 잊자고만 하나?

서로 용서하고 미래를 향해 가야만 캄보디아에 장래가 있다는 뜻이지.

5시간 동안 이어진 긴 인터뷰는 끝났다. 허리도 아프고 골치도 아픈 이 인터뷰를 늙은이는 꼿꼿이 앉아서 치렀다. 캄보디아 현대사, 아무도 ‘모르는’ 그 현대사를 설계하고 이상향을 꿈꾸었던 혁명아 키우 삼판도 ‘모른다고만’ 했다. 역사의 변명은 이렇게 질기게도 이어지고 있다. 두 눈 빤히 뜨고 있는, 기껏 30년 전 역사를 놓고 캄보디아 현대사는 이미 전설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남겨진 고민. “누가 누구를 심판할 것인가?”

과연, 천장을 바라보며 드러누운 채 던진 짱돌은 어디로 떨어질 것인가.


캄보디아 현대사… 키우 삼판은 발뺌해도 좋은가

1931년 : 키우 삼판, 스웨이 리엥주에서 판사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남.
1951년 : 베트남이 이끈 인도차이나공산당(ICP) 해산과 3개 공산당(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으로 분리. 캄보디아에는 크메르인민혁명당(KPRP) 창당.

1950년대 : 키우 삼판, 파리대학 경제학과에서 수학. 박사학위 받음.

1954년 : 캄보디아, 프랑스로부터 독립.

1955년 : 시아누크왕 퇴위. 선거 통해 재집권.

1959년 : 키우 삼판 귀국. 프놈펜대학 법학과에서 강의. 신문<(L’Observateur>) 발행.

1960년 : 베트남, 크메르노동자당(KWP) 창당 지원. 서기장 토우 사무트(Tou Samouth)를 비롯해 폴 포트, 눈 체아, 이엥 사리, 손 센 등 참여.

1962년 : 토우 사무트 실종(시아누크 비밀경찰의 살해로 추정). 폴 포트, 서기장대행 취임. 키우 삼판, 의회 부의장으로 선출. 통상장관 역임.

1963년 : 시엠 리아프에서 학생과 경찰 충돌. 시아누크, 좌익 소행으로 비난하며 키우 삼판과 의원 5명을 34명의 ‘타도자’ 명단에 포함. 키우 삼판, 장관직 사임.

1966년 : 크메르노동자당, 캄푸치아공산당(CPK)으로 개명.

1967년 : 농민봉기. 론 놀 총리, 유혈 진압 뒤 사임. 시아누크, 공산주의자 배후설 주장과 탄압에 맞서 캄푸치아공산당 무장투쟁 전략 수립. 키우 삼판, 프놈펜 탈출.

1970년 : 론 놀, 미국 정부 지원 아래 쿠데타로 괴뢰정부 수립. 시아누크, 망명 ‘캄푸치아국민연합왕립정부’(RGNUK) 수립. 키우 삼판 부총리 겸 국방장관·총사령관에 임명. 캄푸치아공산당 반 론 놀 무장투쟁.

1975년 : 4월17일, 캄푸치아공산당 프놈펜 입성.

도시민 농촌으로 소개. 중노동·질병·기아로 수많은 시민 사망. 9월, 시아누크 귀국

1976년 : 민주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 수립 선언. 시아누크, 국가 수반 사임.

가택연금. 펜 노우스(Pen Nouth) 총리 사임. 폴 포트를 총리로 15인 내각 결성. 인민대표회의에서 국가최고회의간부회 의장(국가수반)으로 키우 삼판 지명.

1978년 : 캄보디아-베트남 국경 충돌 격화. 12월25일, 베트남군 대 캄보디아 전면공격 개시.

1979년 : 1월7일, 베트남군 프놈펜 점령과 괴뢰정부 캄푸치아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Kampuchea) 수립. 민주캄푸치아 타이 국경으로 피신. 민주캄푸치아의 학살 소문 확산에도 유엔이 민주캄푸치아 정통성 재확인.

키우 삼판, 폴 포트 대신 민주캄푸치아 총리에 취임.

1982년 : 민주캄푸치아, 시아누크의 민족연합전선(FUNCINPEC), 손 산(Son Sann) 전 총리의 크메르인민국가해방전선(KPNLF) 3개 정파 연합체, 망명 민주캄푸치아연립정부(CGDK) 수립. 대통령에 시아누크, 부통령에 키우 삼판, 총리에 손 산 임명.

1986년 : 베트남 캄보디아 일부 지역에서 철군 개시. 괴뢰정권 ‘캄푸치아인민공화국’과 ‘민주캄푸치아연립정부’ 평화협상 시작. 키우 삼판, 협상대표로 참가.

1988년 : 베트남군 전면 철수.

1991년 : 10월23일, 캄보디아 4개 정파 파리평화협정 체결. 키우 삼판 협상대표로 참가.

유엔에 ‘휴전’ ‘난민귀환’ ‘무장해제’ ‘군대해산’ ‘자유총선’에 관한 전권 위임.

11월27일, 키우 삼판 프놈펜 귀국과 동시에 폭동 발생으로 다시 출국.

1992년 : 민주캄푸치아 군대 해산 거부.

1993년 : 유엔, 캄보디아과도행정기구(UNTAC)로 캄보디아 통치 시작.

민주캄푸치아, 파리협정 부정하며 투쟁 돌입.

키우 삼판의 민주캄푸치아 제외한 총선 실시.

1994년 : 캄보디아 의회, 민주캄푸치아 불법화 선언과 특사 조건 투항 권고.

1995년 : 약 7천명에 이르는 키우 삼판 휘하 군인 투항.

1996년 : 민주캄푸치아 최대 병력을 지녔던 전 외무장관 이엥 사리 투항.

정부, 이엥 사리의 영역이었던 파일린에 준자치권 부여.

1998년 : 폴 포트 의문사. 정부군, 타 목 전 민주캄푸치아 최고사령관 체포.

12월25일, 키우 삼판과 민주캄푸치아 제2인자였던 전 국회의장 눈 체아 투항으로 민주캄푸치아 완전 해산.







Category

인권일반

  팔레스타인 주간 인권보고서 - 2005년 8월 25일자

2375

버마

  1998 학생운동 7주년에 대한 보고서

1678

버마

  한국기업의 버마가스개발로 인한 인권침해 환경파괴 우려

1799

이주노동자

  (자료집)외노협 창립10주년 기념 토론회

1521

이주노동자

  (자료집)출입국법인권침해토론회

1518

일반

  (자료집)‘테러’와 ‘이슬람’에 대한 왜곡된 시선

1681

일반

  한국의 재식민화 서울의 검은 월요일 : 한국에서의 IMF 개입

5213

평화교육

  평화“의 외피를 둘러싼 치열한 기억투쟁의 현장 (하)

1669

평화교육

  ‘평화’의 외피를 둘러싼 치열한 기억투쟁의 현장 (상)

1860

버마

  그대여, 버마혁명의 배신자여

1576

일반

  ‘아시아의 발전과 시민사회’

2824

일반

  코소보, 운명의 심판대에 서다

1862

인권일반

  또 하나의 동티모르 웨스트 파푸아(West Papua)

1845

일반

  아시아의 개발독재

2125

평화교육

  2005년 캄보디아 지원사업 사전답사 보고서(정귀순)

2432

일반

  미군강점 60년 기획 특집

2451

일반

  동북아균형자론과 한-미 관계

2497

일반

  분수령을 향해 가고 있는 북미핵대결

2178

일반

  “미군들의 학살도 법정에 세워야”

2002

일반

  크메르루주여 영원하라!

2056
[1][2][3][4][5] 6 [7][8][9]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Dizz / modify byujung~♡
index_foo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