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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아시아연대
Subject  
   동북아균형자론과 한-미 관계
ꡐ동북아균형자론ꡑ과 한-미 관계

장창준 / 한국민권연구소 연구위원

4월 29일 <통일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동북아균형자론’과 관련하여 한-미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한-미 양국은 작전계획 5029-05, 방위비분담금, 전략예비물자협상 등에서 구체적인 이견을 보여왔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 관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던 한-미 관계가 다시 조정되는 것인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가 방한하여 송민순 외교부차관보(6자회담 남측 수석대표)와 면담한 후 “심도있는 공동이해를 나눴으며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전술에 합의했다”고 언급하였다. 힐 차관보의 발언대로 한-미 간에 합의가 이루어 진 것인지,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그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힐의 이같은 발언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선의 전술’에 대해 합의를 했다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가 되며, 설령 합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합의’ 여론을 인위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미국의 의도가 불순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 관계에 대한 인식은 무엇인가? 예속의 심화인가, 협력의 강화인가 아니면 ‘자주 노선’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균형자론’을 천명한 후 전개되었던 한미 관계의 갈등 양상을 돌아보고 상호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최선의 전술 합의’ 발언이 나오기까지 한미 관계를 진단해본다.


대통령 발언을 통해 본 ‘동북아 균형자론’의 형성 과정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던 노무현 정부의 대외 정책은 2005년 접어들면서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새롭게 구체화되었다. ‘협력적 자주국방’이 국방정책에서의 새로운 접근이라면 ‘동북아 균형자론’은 국방 뿐 아니라 외교정책에서의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국방 분야를 포함한 더 큰 범주의 개념인 것으로 이해된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동북아 균형자론’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자.

“우리 군대는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군대로서 동북아시아의 균형자로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낼 것입니다.”

2월 25일 대통령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의 발언이다.
이같은 기조는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도 확인된다.

“우리 군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

동북아시아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소극적 반대 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월 22일 3군 사관학교에서의 축사에서는 ‘동북아시아의 세력판도 변화’까지 언급하였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판도는 변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국방정책 위주였다. ‘협력적 자주국방’의 연장선에 이해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3월 30일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외교’ 분야로 확대되었다.

“우리 외교는 동북아 질서를 평화와 번영의 질서로 만들기 위해 역내 갈등과 충돌이 재연되지 않도록 균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공론화된 ‘동북아 균형자론’은 유럽 순방 중 4월 10일 베를린 동포간담회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표명되기도 하였다.

“한국 국민의 의지와 역량은 이제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고 동북아에 어떤 상황이 와도 우리 국민의 의지와 역량이 동북아 평화를 깨뜨리는 어떠한 일도 용납지 않을 만한 역량을 갖고 있다.”

이상이 2005년 들어 ‘동북아 균형자론’과 관련된 노무현 대통령의 주요발언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2005년 들어 갑작스럽게 제기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8월에 사실상 ‘동북아 균형자론’을 밝힌 바 있다. “자주국방과 한-미 동맹은 결코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이므로 더욱 단단하게 다져나가야 하고 동북아에 평화와 번영의 질서가 자리잡을 때까지 평화와 안정의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2003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 축사를 통해 밝혔다. 더 나아가 “다시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쪽에 기댈 것인가를 놓고 편을 갈라서 싸우다가 치욕을 당하는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라며 ‘동북아시대 구상의 핵심’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후 2004년 6월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가 이를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상’으로 정식화한 바 있다.

그렇다면 ‘동북아 균형자론’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며, 최근 그와 같은 발언을 강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발칙’한 발상, 한-미 간의 갈등 고조

‘동북아 균형자론’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동북아시아에서 상호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지역질서를 창출함으로써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실현한다.
② 국방력을 강화하여 작전권을 가진 강력한 군대를 만든다.
③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반대한다.
④ 한-미 동맹을 기축으로 주변 4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예방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⑤ 한-미 동맹을 유지하되 한-미 관계는 재정립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②는 용납가능한 일이다. 군사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미국의 무기를 구입하겠다는 것이므로 환영할 일이며, 작전권 환수 역시 10년 이내로 못을 박고 있어 미국 입장에서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①과 ④의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는 해석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할 수 있는 문제이다. 즉 일반적 수준에서의 언급이라면 미국이 크게 신경 쓸 아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3월 22일 발언대로 ‘동북아시아의 세력판도 변화’를 한국이 주도하겠다는 내용이라면 미국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미국 입장에서 ‘동북아시아의 세력판도 변화’는 자신이 주도해야 하며, 한국 정부는 미국이 짜놓은 틀을 수용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줄곧 밝혀왔던 것처럼 6자회담에 대한 ‘인내력’이 ‘소진’되어 군사적 행동을 정책화했을 때도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미국의 대북 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④에서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한-중 간의 군사 교류의 강화이다. 노무현 정부는 ‘일본 수준으로 중국과의 군사 관계를 강화하겠다’며 한-중 국방장관 회담을 최근에 한 바 있다. 미국으로서는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체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될 수 있는 문제이다.
③과 ⑤는 미국에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기동군화’는 미국 중심의 21세기 동북아시아 질서를 확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소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미국의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같은 ‘반기’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미 관계 전반’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사로 확대되었다. 미국으로서는 ‘발칙’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한-미 관계의 전반에 대한 재정립’은 최근 한-미 간에 많은 갈등 양상으로 구체화되었다.
방위비 분담협정 과정에서 한국측은 분담금 감축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였으며 이에 대해 미국은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노동자를 1천명 감축하겠다’, ‘전차․야포․탄약 등 사전배치물자를 감축하겠다’는 협박성 발언으로 화답하였다.
‘발칙’한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군기 잡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군기 잡기’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미국의 협박성 발언은 오히려 한국 국민들의 반미 여론을 강화하였으며, 노무현 정부는 ‘한-미 관계 재정립’을 더 강하게 요구하였다. 작전계획 5029-05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전개된 한-미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분석하듯이 - 물론 이 분석은 한-미 갈등을 부각시켜 노무현 정부를 흔들겠다는 불순한 의도를 갖는다 - ‘한-미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사건’임은 분명하다.


작전계획 5029-05 논란을 통해 본 ‘동북아 균형자론’의 한계

미국의 한반도 작전계획은 이미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전면전 개념인 5027 외에도 전면전 이전의 사전 단계의 계획으로서 5026, 5030을 수립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에 촉발된 작전계획 5029는 기존의 전쟁계획과는 성격을 달리 한다.
노무현 정부가 5029-05 계획 수립을 거부했던 이유는 ‘한국의 주권 문제’였다.
작전계획 5029는 ‘북한 정권에 이상 상황 즉 정권 붕괴나 소요 사태가 생겼을 경우 전시가 아니더라도 미국이 북한 지역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그와 같은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경우 당연히 한국이 ‘개입’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무현 정부가 ‘한국의 주권 문제’를 말한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물론 그 배경이 어찌 되었더라도 한-미 간에 공동으로 작전계획을 수립하자는 미국의 요구에 협상 중단 의사를 표명한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노무현 정부에게 안타까운 것은 작전계획 5029를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5029의 문제점은 ‘한국의 주권 침해’ 부분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생존권 위협’에 있다. 작전계획 5029는 ‘전쟁 유도 계획’이다. 모든 정보는 미국이 독점하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를 규정하는 것은 미국의 정보에 달려 있으며 이는 미국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하게 된다. 한국 정부는 이 부분에 개입할 수 있는 어떤 능력도, 구조도 갖고 있지 않다.
만약 미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외교적 해결이 아니라 ‘다른 선택’ 즉 군사력을 동원한 해결로 방향을 설정하게 되면 작전계획 5029는 그야말로 미국에게 ‘안성맞춤’의 전쟁계획인 것이다. ‘북한 급변사태’라는 명목으로, ‘북한의 질서를 회복한다’는 구실로 한반도에서 전쟁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성하고 군사적 충돌을 유도하겠다는 극히 위험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작전계획 5029인 것이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한국 정부가 거부한다고 하여 중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또한 한-미 군사관계의 구조상 한국 정부가 ‘거부 의사’를 표명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입장에서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 작전통제권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무현 정부가 협상 중단 의사를 밝히자 일본에 있는 미7함대 사령관이 독자적으로 ‘북한 급변 사태시 7함대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한국 정부의 의사를 정면으로 무시한 것이며, 미국의 대북전쟁 의사를 노골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주권 문제’라는 안이한 인식을 하고 있는 사이에 미국의 전쟁 계획과 준비는 보다 치밀해지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 균형자론의 한계’ 더 나아가 ‘동북아 균형자론의 무기력함’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동북아 균형자론’의 타당성과 실현가능성 진단

한-미 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동북아 균형자론’은 긍정적 요소가 없지 않다.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과 태도는 칭찬받을 만 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반대하고, 작전계획 5029 수립에 ‘반대표’를 던진 것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안된다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부시 재선 이후 그리고 북한의 2.10 성명 이후 더욱 확고해 지고 있다고 평가할 만 하다.
미국이 ‘북핵 문제’의 유엔안보리 상정과 경제제재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가 당정회의를 통해 반대입장을 밝힌 것도 긍정성의 연장이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선 타당성을 검토해보자.
‘동북아 균형자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했던 것처럼 ‘강력한 군사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게 있어서 ‘강력한 군사력’은 첨단 무기의 도입이다. 첨단 무기의 도입은 미국 무기를 사들이겠다는 것이다. ‘협력적 자주국방’을 표방할 때 이미 확정되었던 미국의 첨단 무기 도입은 ‘동북아 균형자론’의 기본 취지를 뒤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강력한 군사력’을 위해 공중전력 차원에서 F-15K 전투 폭격기와 원거리 정밀유도무기인 합동직격탄 그리고 개량형 패트리어트 미사일(PAC-3) 등을 도입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여기서 합동 직격탄은 미국의 한반도 전쟁계획 중 하나인 5026 작전계획에서 가장 기본적인 무기이며, 개량형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미국이 추진하는 MD 체제의 기본 요격 미사일이다. 노무현 정부가 원하던 원치 않던 ‘강력한 군사력’ 차원에서 도입하는 무기들이 모두 ‘강력한 한미 군사 동맹’에 필수적인 요소들인 것이다. ‘강력한 군사력’은 역설적이게도 ‘강력한 종속’으로 귀결될 것이다.
다음으로 막대한 국방비가 소요되고 동북아시아에서의 군비 경쟁을 촉발시킨다는 점이다. 현재 노무현 정부는 국방비를 GDP 대비 3.5%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으로 해마다 국방비를 증액시키고 있다. 이같은 국방비의 증액은 국민 혈세를 소모적인 군비 경쟁으로 낭비하는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의 군비경쟁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경쟁과 대결’ 만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이번엔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긍정적 요소에 대한 실현가능성 여부를 살펴보자.
미7함대사령관이 작전계획 5029-05를 독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데서 확인되듯이, 미국의 기본 정책은 일방주의이다. 한국 정부가 반대한다고 하여 자신의 전략과 정책을 전환시킬 미국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가 고려해야 할 것은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북군사정책에서 탈피할 수 있는 한-미 관계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전시 작전통제권이 된다. 현재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은 주한미군사령관인 한미연합사령관이 쥐고 있다. 이같은 구조가 계속된다면 ‘전쟁 불가’라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미국의 대북군사행동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작전계획 5029-05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은 이같은 한-미 간의 구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실현 가능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것은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10년 이내’라는, 너무나 막연한 기간을 설정하고 있다. 현재의 동북아시아 정세를 놓고 보면 10년이라는 기간 안에 엄청난 격변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이 막연한 기간을 두고 작전통제권을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동북아 균형자론’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람 앞의 등불, ‘동북아 균형자론’

최근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한․중․일 세 나라를 순방한 후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다시 3국을 순방하였다. 힐 차관보의 순방은 한국에서 출발하여 한국에서 끝을 맺는다. 한국 정부와 할 이야기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위험스러운 것은 힐 차관보의 3국 순방을 전후하여 미국 행정부 안팎에서 대북 강경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4월 25일자 산케이 신문은 미 고위 관료의 말을 빌려 미국이 새로운 선택의 검토에 착수했다며 유엔안보리 회부, 중국에 대한 대북압력 강화 요청, 북핵과 미사일 수출 감시 및 저지를 위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강화 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6월 15일 안에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 백악관 대변인이 유엔안보리 회부를 공식적으로 거론하는가 하면, 라이스 국무장관 역시 “부시 대통령은 모든 옵션을 다 갖고 있다”며 연일 안보리 회부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4월 23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정부가 중국 측에 긴급 외교 서신을 보내 북한의 핵실험을 단념시켜 줄 것을 은밀해 요청했다”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미국이 북한 선박을 차단하기 위한 유엔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북한의 2.10 외무성 성명 이후 ‘6자회담 복귀’만을 주장하던 미국의 대북 행보가 한 단계 더 강경해 진 것으로 판단된다.
힐 차관보의 3국 순방은 이같이 미국의 입장이 강경해 지는 시기에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더 주목되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힐 차관보가 북한의 핵실험 준비 징후에 대해 베이징과 도쿄, 서울 관계자들과 협의하기 위해 떠났다”고 보도하였으며, 힐 차관보 역시 한국에 도착하여 “이번 방문 기간에 한중일 3국 당국자들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전향적인 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 “북한이 6자회담을 계속 거부한다면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하여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였다.
즉 힐 차관보의 최근 3국 순방은 미국이 대북제재에 착수하기 전에 한․중․일 3국의 협력을 요청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와 비공식 회담을 한 후 힐 차관보는 “심도있는 공동이해를 나눴으며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전술에 합의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여 주목을 끌었다. 미국의 관점에서 힐 차관보가 언급했던 ‘최선의 전술’은 미국의 대북제재 방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힐 차관보의 말대로 한국 정부가 ‘최선의 전술’에 대해 합의했는지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측은 일절 언급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관련 당사자들의 발언을 통해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그에 앞서 확인해 야 할 것은 ‘최선의 전술’은 낮은 수준과 높은 수준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낮은 수준의 ‘최선의 전술’은 한-미 양국이 노력하여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이 핵실험과 같은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지 말도록 설득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며, 다른 한편으로 북한 대한 경고성 발언을 강화하여 북한의 핵실험을 견제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낮은 수준의 ‘최선의 전술’은 외교적 전술의 일환이다.
다음으로 높은 수준의 ‘최선의 전술’은 최근 미국 행정부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유엔안보리 회부와 같은 유엔을 통한 대북 압박, 경제제재 강화, 한국 정부의 PSI 훈련 동참 등이 될 것이다. 이는 명백히 외교적 전술이 아닌 군사적 전술이다.
미국이 무엇을 제안했을지는 분명하다. 낮은 수준의 전술은 높은 수준의 전술을 위한 사전단계이다. 따라서 미국은 낮은 수준과 높은 수준의 전술을 모두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노무현 정부로서는 현 단계에서 ‘높은 수준의 전술’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곧 전쟁으로 가는 수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힐 차관보의 방한 과정에서 한-미 양국은 다시 한번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는 판단이 가능하며, 이에 ‘심기’가 상한 힐 차관보가 ‘최선의 전술에 대해 합의를 보았다’는 발언을 통해 노무현 정부를 압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가능하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낮은 수준에서의 전술은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외통부 장관이 “만일 북한이 무모하게 핵실험까지 하는 조치를 취하면 북한 스스로 이제까지 고립돼왔던 상황을 심화시키고 미래에 대한 보장도 받지 못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며 대북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정동영 통일부장관 역시 4월 28일 업무보고 결과를 설명하면서 “(북핵실험은) 분명한 것은 현재 진행중인 대화의 틀, 근간을 흔들게 되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북한은)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라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 정부에게 보다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대북 정책이 보다 강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낮은 수준의 전술이 전혀 성공하지 못하여 만약 미국이 높은 수준의 전술 일변도로 나간다면 한국 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예를 들어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수출을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대북해상봉쇄에 착수하고 한국 정부에 동참을 바란다면, 혹은 미국의 해상봉쇄에 이북이 전시상태를 선포하고 미사일 실험이나 핵실험을 강행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노무현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노무현 정부는 암담할 따름이다.

그러나 한편 노무현 정부가 ‘높은 수준의 전술’에 합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북의 핵실험을 ‘인내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이북의 핵실험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하는 정책으로 선회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힐 차관보의 방한과 관련하여 한 외교부 당국자가 “(힐 차관보와) 개념적 차원과 구체적 계획에 대한 얘기가 있었고, 폭넓은 얘기를 했다는 것은 많은 상황에 관련된 얘기를 했다는 것”이라며 “북핵 해결을 위한 관련국들의 노력이 결실을 볼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이 조만간 나올 것이며, 그것이 긍정적일지 아닐지에 대한 평가를 내려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발언을 하였다. 미국쪽에 무게 중심이 실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미국과 일본이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합의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있었는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노무현 정부의 미국쪽으로의 무게 중심 이동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힐 차관보의 방한에서 어떤 논의가 되었던 간에 분명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상당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노무현 정부로 하여금 ‘균형자’라는 객관적 역할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민족 공조, 자주노선에 입각해야 실현 가능

북-미 대결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에서의 일련의 상황 전개는 노무현 정부로 하여금 ‘동북아 균형자론’의 방향 설정을 요구하고 있다. ‘동북아 균형자론’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실질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민족 공조, 자주 노선에 입각해야 한다. 한-미 동맹의 틀 안에서는 결코 평화와 번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역사와 현실의 교훈이다. 한편 한편 ‘북한위협론’이라는 그릇된 대북관에서 탈피하여 민족 공조를 강화했을 때 평화와 번영이 이룰 수 있다는 확고한 인식을 하여야 한다. ‘북한위협론’에서 탈피하지 않는 이상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미 동맹’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으며, 동북아시아의 군비 증강만을 초래할 것이며 이는 곧 평화와 번영이 아닌 경쟁과 대결의 동북아시아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동북아 균형자론’, 적극적 비핵군축 정책으로 선회해야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군비경쟁으론 실현될 수 없다. 오로지 비핵군축으로 실현된다. 이미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어 있는 조건에서 한반도에서의 긴장 고조는 곧 핵전쟁 위기이다. 이는 곧 민족 공멸을 의미한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이같은 현실을 직시했을 때 현실성있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며, ‘동북아 균형자론’이 진정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구상이라면 노무현 정부는 비핵군축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현재 이북은 미국이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에 대해 사과하면(비공개로도 가능하다는 유연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회담을 재개할 수 있으며, 그 회담에서 비핵군축을 실현하자고 호소하였다. 그 과정을 통해 현 단계에서 핵동결이 가능하며 회담이 진척되고 북-미 사이에 수교를 맺게 되면 핵무기를 폐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핵군축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이제 노무현 정부가 화답해야 할 차례이다. ‘자주국방’이라는 미명 아래 추진되고 있는 첨단 무기의 도입을 중단하고 일체의 전쟁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이상 미국의 압력과 협박에 괴로워 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군축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을 때 ‘동북아 균형자론’은 빛을 발할 것이다.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

6월 개최가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이다. 또한 ‘동북아 균형자론’은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 ‘한미 동맹 강화’로 귀착되느냐, 아니면 ‘동북아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느냐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다.
6월의 시기는 아마도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이다. 어느 쪽에서 먼저 정상회담을 제안했던지 간에 미국은 대북제재에 한국측의 참여를 독촉할 것이며 노무현 대통령은 수많은 갈등과 유혹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추가적 조치’에 합의를 보았던 2003년의 과오를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한미 관계와 동북아질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선택할 것인가의 여부는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몫이다.
노무현 정부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국민들의 지향과 염원이다. 현재 거의 대부분의 여론 조사에서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1순위 국가로 미국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 국가로는 일본을 지목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를 만나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최근 여론조사는 보여주고 있다. 후보시절부터 이야기해왔던 ‘미국에게 할 말은 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국민들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노무현 정부는 미국에게 전쟁 불가에 대한 확고하며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작전계획 5029-05 수립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입장 표명이 아닌 미군의 독자적인 5029-05도 반대한다는 분명한 평화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국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시각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왜 우리 국민들이 한반도 평화 파괴자로 미국을 제일 먼저 지목하는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 하며, 우리 국민의 평화에 대한 의지와 입장을 확고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세 번째로 작전통제권의 조기 환수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주한미군이 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 국민의 안정과 한반도의 평화는 보장될 수 없으며, 작전통제권의 조속한 환수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지름길을 노무현 정부는 분명히 인식하고 부시와 회담에 임해야 한다.
네 번째로 비핵군축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그 첫 단계로 미국이 대북핵협박을 중단하고 6자회담이 개최될 수 있는 조건과 명분을 만들 것을 촉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국에서의 활동을 노무현 대통령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와 같은 외교상 평화활동은 전직 대통령만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도 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남과 북의 통일 의지를 과시하여야 한다.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공동선언 이행을 반대해왔던 미국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하며 더 이상 민족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말 것을 촉구해야 하며, 어떤 난관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조국 통일의 대과업을 완수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위대하며 우리 민족은 강력하다. 한미 동맹이라는 틀 안에서 우리 국민의 이익이 희생당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이 유린당하는 일이 언제까지고 되풀이될 수는 없는 일이다. 6월의 한-미 정상회담이 기존의 낡은 한-미 예속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고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데 기틀이 되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 노무현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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