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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아시아연대
Subject  
   2005년 캄보디아 지원사업 사전답사 보고서(정귀순)
2005년 캄보디아 지원사업 사전답사 보고서

정 귀 순,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대표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

이번 캄보디아 방문은 아시아평화인권연대에서 아시아의 가난한 민중에 대한 지원사업의 하나로 캄보디아 의료지원사업을 검토하면서, ‘百聞以不如一見’(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현지 사정이 어떤지 직접 눈으로 보고 그 곳에서 활동 중인 NGO들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활동을 하면서 어떤 고민들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는 현지 답사 성격의 여행이었다. 방문단은 캄보디아 지원사업의 중심에 서 계신 이윤벽신부님과 의료전문가 조현장님과 안양숙님, 이 신부님과 늘 함께하시는 김상범님, 이렇게 다섯 명이 베트남의 호치민시를 경유하여 캄보디아로의 5박 6일간의 일정동안 이루어졌다.

과거가 찬란했던 곳 중에 현재도 찬란한 곳은 없는 것 같다. 그것이 시간의 의미이자 역사인 모양이다. 캄보디아는 우리에게 ‘앙코르와트’라는 경이로운 유적지로, 그리고 ‘킬링필드’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보았던 그 참혹한 정치현실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긴 식민지의 경험과 거의 20년에 가까운 내전으로 캄보디아의 비옥한 땅은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고, 캄보디아인들은 삶의 의지를 상실했다. 1991년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나고 15년이 지난 2005년 5월, 건기 막바지의 40도에 이르는 무더위 속의 캄보디아에서 나는 두 가지를 보았다. 하나는 마치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듯 왕국(Kingdom of Cambodia)의 이름아래 새로운 삶을 이루어가려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활기, 그리고 동시에 지독한 상처를 입었음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맑은 눈빛을 가진 이들의 그 눈 속에 드리워진 깊은 그늘이다.

살면서 일찌감치 인생에서 모든 시간이 같지 않음을 알았다. 삶에는 두터운 시간과 얇은 시간이 있음을, 때로 일 년 같은 10년도 있고, 10년 같은 1년도 있다는 것을. 이번 캄보디아 답사의 5박 6일간의 짧은 일정(한국에서 오가는 시간을 빼면 정확하게 3일을 캄보디아에 머물렀다)이 마치 3주쯤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진 것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상처투성이인 캄보디아에 기꺼이 삶을 바친 아름다운 사람들이 일하는 현장과 그들이 빚어내는 인간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받은 감동의 여운이 길게 남아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동안 의미 있는 곳을 방문할 수 있었고, 또 좋은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예수회 소속의 강인근, 오인돈 두 신부님 덕분이었다. 우리의 답사여행은 두 분이 그 곳에서 이루어놓은 깊은 신뢰를 딛고 다닌 길이었다. 두서없이 산만하기만 한 우리 일행을 위해 전체 일정조정과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오인돈신부님과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헐어 우리 일행을 끌고 멀리 바탐방까지 동행하면서, 즐거움을 안겨준 강인근신부님께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고마움을 안고 돌아왔다. 캄보디아를 떠나자마자 그 곳이 그리워졌고, 지금도 눈을 감으면 캄보디아 사람들의 선한 미소가 별처럼 가슴으로 쏟아진다.


Ⅰ. 방문의 전체 일정

이번 캄보디아에서 방문했던 곳은 크게 두 도시, 수도 프놈펜과 서북부에 위치한 바탐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프놈펜에서, 캄보디아 전체 인구 1,200만 명 중 10%인 12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 수도 프놈펜에서 방문했던 곳은,
◑ ‘Jesuit Service Cambodia’에서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재활센타
◑ 도시빈민촌 Anlong Kngan(프놈펜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학교, 보건소 및 현지 활동 센타의 Maryknoll Project
◑ 테레사수녀가 창설한 ‘사랑의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에이즈센타

바탐방에서, 프놈펜에서 차로 4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바탐방에서 방문했던 곳은,
◑ 한국 원불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의료센타
◑ 가톨릭 바탐방교구 성당 내 재활센타
◑ 전쟁피해자를 위한 Emergency Hospital

마지막으로 시간이 허락지 않아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프놈펜 변두리에 위치한 마을에서 에이즈환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계신 신부님께서(한국 외방선교회 소속) 그곳의 활동에 대해서 간단한 브리핑을 해주셨다.



Ⅱ. 프놈펜

◑ Jesuit Service Cambodia에서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재활센타’

1) 재활센타의 교육과정
이 장애인 재활센타는 전쟁동안 태국 국경변의 캄보디아 난민을 돌보던 예수회에서, 전쟁이 거의 종료된 1990년 캄보디아 정부에게 요청하여, 전쟁피해자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위해 과거 군대의 막사로 쓰이던 땅을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임대하여 막사건물들을 수리하고 일부는 새로 건물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이 재활센타는 캄보디아 전역에서 선별된 18∼40세 사이의 100명의 교육생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목공, 농업, 정비, 봉제, 조각, 전기기술교육 부분으로 나뉘어 1년 동안 교육을 받으며 재활을 준비하는 곳이다. 기술교육과 동시에 캄보디아 언어를 비롯한 기초교육도 받는다. 섬세한 목공예 조각과 캄보디아 지형에 맞는 휠체어생산공장은 교육과정을 넘어 Production(상품생산)으로도 완전히 자립해 있다. 그리고 정비기술교육은 대중교통 수단이 거의 없는 캄보디아에서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가 사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자활의 현실성이 높은 기술교육이었다.
교육비 및 생활비 전부가 무료여서 이곳에 오려는 장애인들이 넘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는데, 교육생 선발은 3개월간 각 지역과 마을을 대상으로 사전 조사를 거쳐, 모든 장애인들이 도움이 필요하지만 도움이 더 절실하고 재활교육이 가능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follow up이 가능한 조건을 갖춘 이를 선발한다고 한다. 즉 1년의 교육과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그의 삶과 함께 하는 넓은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2) 정신적 재활
Jesuit Service Cambodia에서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불교국가인 캄보디아인들의 사고 속에 ‘장애’는 전생의 업보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으로 심각하다고 한다. 따라서 장애인들은 생활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 차별로 인한 정신적 고통도 크기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사업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재활센타의 교육은 기술을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통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교육생들은 10명 정도가 교사 1명과 함께 독립된 집에서 식사와 일상생활을 꾸려나가게 된다. (재활센타의 넓은 마당에는 캄보디아 일반가정의 주택들이 줄줄이 지어져 있다) 재활센타 설립 초기에는 지뢰 등의 전쟁으로 인한 장애인이 대부분이었고, 최근에는 소아마비 등 장애인들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벌써 15년에 이르는 이 사업의 또 다른 성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대하는 장애인들에 대한 따뜻하고 각별한 대우가 캄보디아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들을 조금씩 바꾸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장애인들의 편안하고 환한 미소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3) 농촌지원사업 : 농민연대협회기금 (Farmer Solidarity Association Capital)
이 재활센타 내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캄보디아에서 아주 유명한 수녀님 한분을 만났다. 그는 프놈펜 인근 12개 마을의 농민들을 지원하고 조직하는 캄보디아의 농민운동의 대모로, ‘Farmer Solidarity Association Capital’ 이라는 Project 하에 ‘Cow bank'(기금에서 농민에게 소 한 마리를 사주고, 나중에 그 소가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로 갚는 것), 'Seed Bank'와 같이 농민들이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Project가 진행 중이었다.

4) 공존
재활센타에서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하나는 94년(기억이 맞는지 자신이 없지만)에 재활센타 교육생 중 한명이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수류탄을 터트려 자살하려고 하자, 당시 센타에서 일하던 필리핀 출신의 수사가 그 교육생을 말리려고 안았고, 그 때 수류탄이 떨어져 필리핀 수사의 뒤에서 터져 그는 사망했다. 재활센타가 생긴 후 유일한 사고였던 그 사고 현장에는 바닥 패인 자국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이곳에는 장애인들만이 아니라 장애를 입은 개도 함께 살고 있었다. 낯선 이를 피해 쓰지 못하는 뒷다리 들고 앞다리로 익숙하게 움직이는 그 개는 아마 재활센타 밖에서는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개를 쳐다보며 재활센타의 교육생들은 자신을 보듯 안타까운 마음으로 쳐다보았을 것이리라 짐작된다.

5) 예산
이 장애인 재활센타의 연 예산은 10∼15만$ 정도라고 한다.


◑ 도시빈민촌 Anlong Kngan (프놈펜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

빈민촌인 Anlong Kgnam에는 프놈펜 시내 메콩강가에 살고 있던 빈민촌에 대형화재가 발생한 후 정부 측에서 강제 이주시킨 마을로 약 17,0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당시의 대형화재는 정부 측에서 이주시키기 위해 방화한 것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기도 하다.

1) Maryknoll Project (Anlong Kngan 지역사업)
빈민촌 Anlong Kngan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사업은 가톨릭 Maryknoll회의 지원으로 3년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사업 내용은,

►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우리가 센타에 도착했을 때 막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의 공부방 수업이 끝나 아이들이 나오고 있었다.

► 무료진료활동
센타 한켠에 있는 진료소는 매주 화요일 오전 열리고(무료진료소), 오후에는 마을로 방문 진료를 나간다고 한다. 병원에 가야 할 환자들은 매주 금요일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 마을 내 에이즈환자를 위한 프로그램
이 Anlong Kngan 내에는 에이즈로 확인된 87명의 환자들이 있다. 이 환자들의 정기적인 검진과 약복용(독일의 NGO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검진과 약 제공), 환자들의 생활을 돌보고 있다. 생활이 불가능한 환자에게는 1인당 1주에 10,000리엘 (한 달에 40,000리엘=1$)을 지원하고, 생계수단을 찾도록 지원하는 일, 그리고 부모가 에이즈환자인 경우, 자녀들의 지원(학비 등)도 하고 있다.

► 운영
이 센타는 책임자 1명과 필리핀 출신의 간호사이자 활동가 1명과 캄보디아 의대생 1명, 캐나다 출신의 자원활동가 1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 Project는 연 3만$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2) 학교
센타에서 공부방을 담당하는 스텝의 안내로 마을 입구에 위치한 중등학교를 방문했다. 작은 체구의 단단한 인상의 교장과의 얘기를 통해 캄보디아 교육현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캄보디아의 공식적인 문맹률은 37%라고 하지만, 실제 문맹률은 그보다 더 높다고 한다. 초등학교 밖에 없던 이 지역에 2003년 9월 7학년부터 9학년까지의 이 중등학교가 설립되게 된 것은 Maryknoll Project를 운영하면서 중등학교의 필요성이 절실하여 해외지원을 조직하게 되었고, 일본의 한 고등학교의 모금과 한국의 가톨릭의 지원으로 건축비 25,000$를 모아 학교를 지었다고 한다. 이 학교에는 Anlong Kngan을 비롯하여, 인근 6개의 마을에서 617명의 학생들이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하고 있다.

현재 이 학교의 가장 큰 어려움은 교실의 부족이다. 올 9월이면 9학년을 졸업하고 10학년에 입학해야 할 학생들의 교실이 없고, 새로 7학년에 입학해야 할 학생들을 수용할 교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학교 건물이 새로 하나 지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낮은 교육의 질이다. 29명의 교사들의 임금은 평균 35 ~ 38$ 수준이며, 그나마 제 때 지급되지 않아 교사들의 의욕을 한껏 떨어뜨리고 있었다. 가난한 학생들은 교과서를 구입할 수 없어 다 쓴 교과서를 모아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 하고, 도서관이라 이름 붙은 작은 공간에 책은 거의 없었다. 가난하여 책을 사 볼 수 없지만, 학교 도서관에서라도 마음껏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야 하지만 여의치 않고, 글을 쓸 노트와 연필, 그림을 그릴 크레파스, 물감 등 학용품의 부족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나마 학교에 올 수 있는 아이들은 다행이다. 학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구걸을 하거나 길거리에서 고물을 주워 팔아서 먹을 것을 마련해 하니까.

3) 보건소
센터의 의료담당자의 안내로 학교 옆에 있는 보건소에 들렀다. 보건소는 정부기관으로 의사의 진료실 하나, 검사실 (검사실이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지만)이 있고 하루 평균 40명 정도의 환자가 온다고 한다. 환자가 찾아오면, 진찰하고 처방하여 3일분의 약을 주는데, 진료비는 성인 1,000리엘(250원 정도), 아이는 500리엘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장 염려되는 결핵을 진단할 수 있는 X-ray 촬영이나 객담검사, 혈액검사 등 기초적인 검사시설은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은 낮은 수준이었다.
보건소는 정부기관인 만큼, 의사는 공무원이다. 그러나 캄보디아 의사의 평균 월급은 40$정도라고 한다. 4인 가족 기준, 도시 평균생활비가 120$ 정도라는 통계를 기억한다면, 보건소 의사 월급으로는 살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모든 의사들이 병원에 적을 두고 오전에는 그 곳에서 근무하고, 퇴근 후 집에서 개인적으로 진료를 하고 있다.(약국을 겸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공공진료는 질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4) 마을에서
상하수도 시설이 없는 마을의 가장 큰 문제는 식수다. 마을 입구에 일본의 한 기관의 지원으로 설치한 펌프가 눈에 띄었지만, 식수공급은 물론이고, 화장실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생활하수와 배설물로 완전히 오염된 환경에서 어지간히 깊이 파지 않는 한 지하수도 그리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는 그 집의 경제적 수준을 파악하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단다. 하나는 집의 기둥, 즉 집의 기둥을 대리석 혹은 벽돌 혹은 나무 등 어떤 재질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기둥이 몇 개나 되는지가 그 집의 부의 척도가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빗물을 저장하는 항아리의 갯수라고 한다. 물이 귀한 캄보디아는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써야 하는데,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는 항아리를 몇 개나 보유하고 있는지만 보면 그 집의 부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기둥이나 물 받는 항아리로 측정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마을 주민들은 가난으로 인한 영양결핍과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일상적으로 질병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 마을 주민 과 에이즈 환자들
센타의 의료담당자와 함께 마을의 에이즈 환자들을 만나보았다.
마을에서 처음 만난 이는 51세의 여성이다. 그는 8년 전 남편이 죽었고, 11살, 그리고 8살의 두 딸을 둔 어머니이다. 그러나 그는 1년 전 검사를 통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생계능력이 없는 그는 메리놀 사업의 지원으로 한 달에 1$씩의 생계비를 지원받고, 한 달에 한번 병원에 가서 약을 받고 있다. 다행히 아이들은 건강하다고 한다. 방문한 이들을 환한 미소로 맞아준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나중에 보니 그의 밝은 미소는 온데 간데없고, 그의 눈에는 슬픔만 커다랗게 남아 있었다.
두 번째 만난 이는 30대 후반의 여성으로 4년 전 남편이 그를 떠났고, 그 후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가 에이즈에 감염된 것을 안 것은 2년 전이고, 매달 생활비 지원을 받고 있고, 병원에서 약을 받고 있다.
세 번째 만난 이는 생후 1년도 안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도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이지만, 마을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고 있어 생활이 그나마 나아 보였다.  

캄보디아에 AIDS가 급속히 퍼진 것은 1992년 UN의 평화유지군이 주둔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 그렇게 말한다. UN이 캄보디아에 자유와 함께 AIDS를 선물했다고.
통계에 의하면, 캄보디아 인구의 3%, 약 20~30만 명이 AIDS에 감염된 상태라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AIDS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들, 특히 평범한 가정의 아내들이다. 전쟁으로 남자들의 수가 적어져 AIDS에 감염된 남자들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다고 한다. 남편으로부터 AIDS에 감염되어 그 사실조차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병의 증상이 나타나 그때서야 자신이 AIDS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되니 말이다.    

우리는 궁금해졌다.
한국에서 에이즈 환자임이 알려지면, 아무도 그가 이웃에 살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모두 어울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 지역에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주민들이 그가 에이즈 환자임이 확인되자 함께 살기를 거부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메리놀에서 지역 활동을 하면서, 에이즈에 대한 주민들의 교육을 실시하고,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사업들을 하면서 점차 주민들의 거부감이 사라지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알고 나면, 사실 가장 면역력이 취약한 이들이 바로 에이즈환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건강한 이들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감기바이러스와 같은 가벼운 질병조차 에이즈환자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 됨을 말이다.

5) 마을을 떠나며 (마을의 현실에 대한 몇 가지 걱정들 : 조현장샘 의견)
첫째, 우기에 예상되는 전염병
이 마을의 가장 염려되는 문제는 비위생적인 환경과 오염된 식수로 인해 예상되는 전염병 사태이다. 특히 다가오는 우기에 집중호우나 홍수가 지나간 뒤 오는 콜레라, 장티푸스 등의 집단 질병사태를 막을 수 있는 예방과 교육, 환자관리 등이 절실한 상황이다.

둘째, AIDS 환자
메리놀센타에서 AIDS 환자들을 돌보고 있지만, 캄보디아 전체 통계에 비추어 볼 때,(17,000명 중 3%면 510명이다) 이 마을 주민들 중에도 감염된 이들이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제대로 파악되고 있지 못하다.

셋째, 결핵환자
결핵환자의 경우 격리가 필요하지만, 6개월 전 116명으로 파악되었던 결핵환자가 지금은 관리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더 늘어났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센타 내 무료진료소도 마을 내 보건소에서도 결핵검사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없고, 결핵환자들을 위한 관리와 치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영양상태가 좋지 못한 주민들에게 비위생적인 환경과 함께 결핵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감염될 우려가 있다고 본다.


◑ ‘사랑의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에이즈센타

캄보디아에서 마지막 날 아침 방문한 곳은, 테레사 수녀가 창설한 ‘사랑의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에이즈센타였다. 이곳에는 1995년 설립된 AIDS 병동과 1993년부터 운영해 온 결핵병동, 그리고 매주 토요일에 주민들을 위한 무료진료소가 열린다. 3년의 임기로 전 세계 각지에서 임무를 부여받고 온 7명의 수녀님들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1) 무료진료소
마침 토요일이어서, 병원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이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고, 병원 정문 앞에는 이들에게 음료수를 파는 상인도 있었다. 진료는 현지의사 4명이 토요일만 근무를 하는 조건으로 고용되어 진료를 하고 약을 처방받고 있었다. 아마 프놈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찾아오리라 짐작된다.

2) 결핵병동
현재 결핵병동에 입원 중인 환자는 11명이었다. 결핵환자는 2개월간 입원해서 치료하고, 그 뒤에는 3주에 한 번씩 병원에 와서 진료하고, 약을 받아가는 지속적인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3) 에이즈병동
이곳의 AIDS 병동은 성인병동과 어린이병동이 있다. 성인병동에는 22Bed (남녀 합하여)가 있는데, 방문한 날 병동에 칠을 새로 하느라 환자들이 임시로 귀가한 상태여서 환자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오는 환자들은 더 이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마지막 단계에 오기 때문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병동 2층에는 부모로부터 감염된 어린이환자들의 병동으로, 돌이 채 되지도 않은 영아부터 10세 미만인 아이들 39명이 머물고 있다. 여기 머물고 있는 아이들은 모두 부모가 이미 AIDS로 죽은 고아들로, 건강한 상태로 맡겨진 아이들은 비록 AIDS에 감염되긴 했으나, 치료약의 복용으로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도 있고, 위독한 상태로 맡겨진 아이들은 치료해도 적지 않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너무 어려 아직 AIDS 검사를 하지 못한 9개월 된 아이, 그리고 얼마 전 AIDS 검사에서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어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모처럼 찾아온 손님들로 하여 아이들은 호기심과 즐거움을 감추지 않았고, 덕분에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부모로부터 사랑과 관심이 아니라 AIDS를 물려받은 이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쳐다보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런 일이었다.


Ⅲ. 바탐방

◑ 원불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의료센타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프놈펜에서 4시간 반 가량 소요되는 바탐방에 가기로 결정한 것은 최근에 마을 주민들을 위한 의료활동을 시작한 센타이기도 하고, 활동하시는 분이 한국분이어서 문제의식을 나누기에 적절하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캄보디아에서의 둘째 날 오후, 거리의 아이들을 모아 교육과정을 거쳐 훌륭한 서빙을 하는 웨이터로 취업을 하도록 하는 청소년교육활동 NGO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Friends"에서 점심을 먹고(이 레스토랑의 손님은 이런 취지를 알고 찾아오는 외국인들이다), 모두가 무더위를 피해 오수를 즐기는 시간에 우리 일행은 국립박물관에서 앙코르와트의 축소판을 구경한 뒤, 한국산 이스타나 봉고를 타고 프놈펜을 떠났다.

1) 의료 활동
원불교에서 캄보디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0년부터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해 바탐방 마을의 고아원을 지원하면서 부터였다고 한다. 고아원 건물을 짓고 그곳에 머물고 있는 60명 아이들의 식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2002년 현재의 교당건물과 의료센타를 짓고, 200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두 분의 교무님이 활동하다 한분은 귀국하시고, 현재 최수련 교무님이 그곳에서 일하고 계신다.

의료센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7:30 ~ 9:30까지 진료한다. 캄보디아 의사 한명(월급 230$)과 간호사 한명이 고용되어 있다가, 얼마 전 간호사는 그만두고 교무님이 진료보조를 하고 있다. (간호사가 너무 일을 하지 않아 해고 했다고 한다)
진료소 초기에는 하루 100명 정도의 환자들이 몰려들었고, 최근에는 하루 평균 60명 정도의 환자가 찾아오고 있으며, 환자의 50%는 여성으로 성병을 비롯한 여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고, 나머지 50%는 당뇨,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자들이 많았다. 여성들의 질환은 물이 부족하여 목욕과 샤워 등 청결이 유지되지 않는 것과 비위생적인 환경이 원인이며, 만성질환은 영양상태가 좋지 못한 것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지만, 더운 날씨에 음식을 짜게 먹는 것 등으로 인한 성인병으로 볼 수 있다.

2) 활동 속의 고민들
의료센타 최교무님의 가장 큰 고민은 의료의 질적 수준, 즉 의사의 문제다.
현재 캄보디아 의료수준, 그리고 의사들의 수준은 아주 낮은 수준이다. 현지 의사들의 평균 수준이 심전도기계의 사용과 판독, X-ray의 판독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현재의 진료는 전적으로 의사의 문진과 처방하는 약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로 간단히 표현하면 약을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는 수준이었다. 평생 병원에 한번 가보지 못한 캄보디아인들에게 의사를 만나 약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수도 있지만, 질병의 발견과 치료, 환자의 꾸준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 큰 어려움이었다.
한국에서 온 약이 좋다는 소문이 나서 약을 타려고 몰려드는 환자들도 없지 않았고, 글을 읽지 못하는 환자들이 가져간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못하는 것도 어려움이었다. (한꺼번에 많이 먹어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3) 의료센타를 떠나면서 (조현장샘 의견)
의료센타에 한국에서 전문적인 의사가 파견되어 진료를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방안은 현지 의사를 좀 더 나은 수준으로 어떻게 훈련시킬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의료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약품과 환자관리에 있어 한국의 의료진과 네트워킹을 만드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먼 곳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최교무님은 그의 이름처럼 그 곳에 아름답게 핀 연꽃을 닮았다. 그래서 그의 애씀이 좀 더 의미 있는 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안타까움이 더 크게 와 닿았다.


◑ 가톨릭 바탐방교구 성당 내 재활센타

바탐방 교구의 성당을 가보게 되었던 것은 순전히 강인근신부님의 센스 덕분이었다. 아침을 사먹지 말고, 그곳에 가서 얻어먹자는. 그리고 이른 아침, 그곳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두 분의 수녀님 덕분에 화려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한국식으로 끓인 태국산 라면을 커다란 냄비로 한 냄비를 덤으로 다 먹었음)
한분은 인도출신이고 또 한분은 페루출신의 수녀님은 이곳에서 일정기간 활동한 후 좀 더 떨어진 마을로 들어가 활동을 하실 계획이라 한다. 인도수녀님은 재활센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시고, 페루출신의 까르멘수녀님은 간호사 출신으로 Emergency Hospital에서 일하고 있다. 성당 내 재활센타에 머물고 있는 장애인들은 약 40명 정도로 아이들은 오전에 학교에 가고 오후에 재활센타에서 기술을 배운다. 재활센타의 교사들 대부분은 그곳 출신의 장애인들이다. 그 중에는 프놈펜의 재활센타에서 교육받은 교육생도 있었다.

바탐방에서 보았던 성당과 사찰은 대부분 종교적 역할 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탁아방 혹은 유치원, 아이들의 학교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주민들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만큼, 주민들에게 필요로 하는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특히 가난한 지역의 경우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간식은 아이들의 성장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방치되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 전쟁피해자를 위한 Emergency Hospital

바탐방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1998년 설립된 전쟁피해자를 위한 응급병원, 정형외과 전문병원이다. 바탐방은 캄보디아 서북쪽에 위치한 도시로, 서북지역은 베트남전부터 시작하여 캄보디아의 지뢰가 가장 많이 매설된 지역으로, 내전이 치열할 때는 군대 뿐 아니라 민간인들조차 자신들의 집을 지키기 위해 울타리에 지뢰를 매설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매설된 지뢰는 우기가 되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넘쳐난 물을 따라 흘러 전혀 다른 곳인 마을의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지뢰제거를 위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서북지역에는 5백만 ~ 1천만 개의 지뢰가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지뢰피해자들을 위해 세워진 병원이 바로 이 Emergency Hospital이다. 이 병원은 이탈리아에 본부를 두고 있는 단체에서 기금을 모아 1997년 공사를 시작하고 1998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고, 지난 3년간 1,000명의 전쟁피해자를 수술했다고 한다. 이 NGO는 캄보디아 뿐 아니라 시에라리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의료활동을 하고 있으며, 수단에서도 곧 활동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들의 활동은 의료 + Food, 즉 전쟁피해자들에게 가장 절박한 의료지원과 식량지원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Emergency Hospital에는 3개의 수술실, 5개의 중환자실, 침상이 60개가 있다. 그러나 늘 환자는 그 수를 넘어 70~75명의 침상이 필요하며, 현재 환자는 160명이라고 한다. 의료진은 2명의 해외전문의(이 의사들은 자원봉사활동으로 두 달간 근무한다)와 2명의 캄보디아 현지의사, 2명의 간호사(프랑스와 호주 출신)과 50명의 스탭들이 일하고 있다.

이 병원의 특징은 환자의 개념보다 ‘전쟁피해자’(Victims of War)를 지원하는 개념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환자의 수술과 치료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이 무료일 뿐 아니라 환자의 보호자도 함께 머물며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장기간 머무는 아이들을 위한 교실도 운영되고 있어, 비록 정형외과 전문병원이지만, 캄보디아 전체 의료수준을 생각해 볼 때, 바탐방에서 최고수준의 의료시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병원의 최근 환자의 2/3는 교통사고 환자라고 한다. 전기와 도로사정이 좋지 못한 상태에서 유일한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병원에 오는 모든 환자들에게 무료 의료를 제공하는 만큼, 설립 7년차인 이 병원에서 전쟁피해자들을 위한 병원이라는 취지를 살려나가기 위한 고민들을 시작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병원에서는 시간을 다투는 응급환자를 제외하고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의 수술일정을 조절하여, 자원봉사를 온 의사들에게 수술을 배정하는 등 의사와 환자의 보다 효율적은 수술과 치료를 위한 네트워킹도 운영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서 정형외과 혹은 성형외과 (언청이수술 등) 의료진들도 짧은 기간 의미 있는 자원봉사활동을 추진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Ⅳ. Seedling of Hope (Maryknoll HIV / AIDS Project)

시간이 허락지 않아 방문하지는 못해 몹시 아쉬웠지만, 프놈펜 변두리에 위치한 마을에서 활동을 하고 계신 신부님께서(한국외방선교회 소속), 자신이 일을 배우며 활동하고 있는 캄보디아에서 AIDS 환자들을 위한 Maryknoll AIDS Project에 대해 브리핑 해주신 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 Seedling of Hope (Maryknoll HIV / AIDS Project) 2005년 3월 현재 상황 >

▪AIDS 교육 : 마을별로 3,640명 진행
▪진단을 위한 상담 (검사 전 검사 후 상담) : 44명의 새로운 환자
▪환자의 의료활동 : 327명
▪홈케어 (가정, 병원, 사무실 방문)
▪호스피스 활동 (24시간) : 32명 (2명 사망)
▪식량과 쉼터 : 179명의 홈리스와 자녀들에게 Room 제공 / 78명의 홈리스와 자녀들에게 그룹홈 제공 / 655명의 환자와 그 자녀들에게 식량제공음식
▪재활지원
▪AIDS에 감염된 어린이를 위한 지원
▪AIDS에 환자인 산모를 위한 지원



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 멀었다. 경유지 호치민에서 새벽에 출발한 비행기는 출발한 지 30분쯤 지나자 항공기 결함 때문이라며, 호치민으로 회항했다가 두 시간 후에 다시 출발하는 바람에 남아있는 기력마저 완전히 소진하고, 예정보다 세 시간 이상 늦게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대부분이 승객이 한국임에도 한국인답지 않게(?) 격렬하게 항의하지 않는 것이 뜻밖이었는데, 아마 다들 내심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강인근신부님이 내게 말했다.
‘인간을 파괴하고 고통을 주는 것도 인간이고, 그 상처 입은 인간을 보살피고 치유하는 것도 인간이라고. 그리고 인간을 파괴하고 고통을 주는 이들은 소수이지만, 인간을 보살피고 치유하는 일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고.’
2002년 3월, 미국의 침공으로 삶의 터전을 떠나 난민이 되었던 아프가니스탄인들의 난민촌에서 잠시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 깊은 괴리감과 참담함을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3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그 사이 한국사회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자신만의 삶과 한국의 테두리에 머물지 않고, 다른 이들의 삶과 한국을 벗어난 아시아와 세계의 현실에 관심을 가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선한 뜻을 가진 많은 이들이 새로운 길을 열어 나가리라 생각한다.
캄보디아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곳이라고, 그리고 한번 인연을 맺은 이들은 꼭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한다.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캄보디아를 방문하고 또 그렇게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기를 바란다.



캄보디아 지원사업 사전답사 방문일정표

▣ 방문목적
이번 캄보디아 방문은 아시아평화인권연대의 아시아의 가난한 민중에 대한 지원사업의 연장 위에서 캄보디아에 의료지원사업을 검토하면서, 무엇보다 우선 현지의 사정이 어떠한지, 그리고 이미 그 곳에서 활동 중인 NGO들의 활동과 문제의식들을 들어보는, 현지사전답사의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 방문일정
2005년 5월 4일∼8일 (4박 5일)

▣ 방문자
이윤벽, 가톨릭부산교구 신부,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
김상범, 가톨릭부산교구 시장사목 사목회 부회장
조현장, 구호병원 내과과장
안양숙, 일신기독병원 간호사, 일신기독병원 노조지부장
정귀순,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대표,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

▣ 방문일정표

◑ 5월 4일 (수요일)
11:00          김해공항 출발 ⇒ 베트남 호치민 경유  
18:10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 도착
19:00 ∼ 21:00 저녁식사 (현지 오인돈신부님, 교민 한분과 함께 / 전체 일정 의논)
21:30          숙소도착

◑ 5월 5일 (목요일)
07:00           아침식사 및 출발
08:00           Jesuit Service Cambodia에서 운영 중인 장애인 재활센타 방문
10:30           Anlong Kngan (도시빈민지역)에서 활동 중인 센타 방문
                ⇒ 마을의 중등학교 방문 , 마을 보건소 방문, 마을 둘러봄
12:00          시내로 이동
12:30          점심식사 (Friends Restaurant)
               (거리의 아이들을 모아 교육프로그램 운영 후 식당에서 일하도록 하는 NGO에서 경영하는 Restaurant)
13:00 ∼ 14:30   국립 박물관 견학
14:30            바탐방으로 이동 (캄보디아 서북쪽 도시)
19:00            바탐방 도착 및 원불교교당 방문 (최수련교무님 만남)  
21:30            숙소도착
23:00            취침

◑ 5월 6일 (금요일)
07:00 ∼ 08:00    바탐방 교구 주교좌성당 방문 및 아침식사
08:00 ∼ 11:30    원불교 Medical Clinic 방문 및 의료지원(조현장님, 안양숙님)
11:30 ∼ 12:30    Emergency Hospital 방문 (전쟁피해자를 위한 정형외과 전문병원)    
12:30 ∼ 13:30   점심식사 (까르멘수녀님과 함께)
13:30            바탐방 출발
19:00            프놈펜도착
19:00 ∼ 21:30   저녁식사 (예수회 신부님 두 분과 수사님, 외방선교회 신부님과 함께)
                메리놀에서 운영하고 있는 에이즈환자 프로그램(Seedling of Hope) 설명
22:00           숙소로 귀가

◑ 5월 7일 (토요일)
07:30             출발
08:00 ∼ 10:30    사랑의선교회에서 운영하는 에이즈센타 방문
                 (에이즈병동, 결핵병동 운영 및 토요일 지역주민을 위한 무료진료소 운영)
10:30            공항 옆 식당에서 점심식사
13:05            프놈펜 출발
13:55            베트남 호치민 공항 도착(이창신신부 및 교민 마중 나옴)
15:30 ∼ 17:00   전쟁박물관 견학
18:00 ∼ 20:30   이창신신부님 및 교민들과 저녁식사
21:00           숙소로 귀가    

◑ 5월 8일 (일요일)
휴식 (개별적인 스케줄에 따라)

◑ 5월 9일 (월요일)
01:40          호치민공항 출발
10:00          김해공항 도착 (항공기 문제로 호치민공항으로 회항하는 바람에 지체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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