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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연대
Subject  
   아시아의 개발독재
아시아의 개발독재
[시민의신문] 2005-05-26 18:35  

우리는 서구가 비서구(아시아)와 만나온 방식들을 얘기했다. 11세기부터 특히 유럽의 발전과 팽창을 오리엔탈리즘 개념으로 아우르며 살펴보았는데, 서구가 어떻게 그렇게 식민지를 많이 거느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논하지 않았다. 아시아, 곧 우리와 서구와의 부딪침이라는 관점 위에 우리 자신을 올려놓는 일을 했을 뿐이다.

서구와 비서구의 만남은 단지 식민지 영토의 육체적인 팽창만 뜻하지는 않는다. 그 만남은 그러한 팽창인 동시에 지식이 일정한 권력관계를 이용, 타자를 결정하는 방식의 생산이었다. 서구가 발전시킨 오리엔탈리즘은 타자(비서구)를 해석하는 방식과 행위의 한 차원이자 타자를 복속시키고 지배하는 행위였다. 이 타자를 '해석하면서 지배'하는 행위를 우리는 우리 안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가령 우리가 카스트 제도를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상위 카스트와 하위 카스트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창출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 또한 아이누 같은 원주민들의 삶을 해석하는 일정한 방식이 곧 그들을 지배하는 행위가 되곤 한다. 현대 사회의 원주민 사회 대부분이 아마 그러한 해석 행위 아래 놓여있을 것이다. 마찬가지 사고방식으로 유럽은 팽창했고, 그 사고방식을 우리는 지금껏 '서구중심주의'라는 개념으로 묶어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레베카 김기자
아시아의 개발독재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수렌드라 교수

역사적으로도 11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꽤나 긴 기간이었다. 우리는 아시아 사회마저도 여전히 서구가 가져온 세계관 안에서 자기를 재해석하거나 저항을 자율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해왔음을 보았다. 그들이 매달린 개념 중 일부가 국가, 정체, 국민국가 같은 것들이었다. 자기 대 타자라는 알력 관계는 끈질기게 지속된다. 우리 대 그들이라는 그 구도 속에서 민족주의가 새롭게 부상하는 것을 보았다. 어떻게 이들 국민국가와 민족주의들이 자기 대 타자의 문제를 우리 대 그들이라는 구도로 고스란히 가져가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주권 개념도 마찬가지 논란을 안고 있지만, 대체 누가 우리 나라이고 누가 다른 나라인가. 이는 원주민과 이주민을 둘러싼 문제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 대 그들이라는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 또 다른 중차대한 전개인 자본주의의 발전과 얽히게 된다. 역사적인 변화의 전개를 그 삶, 다시 말해 경제를 이루는 물질적인 조건들의 변화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알다시피 물질적 조건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변화 속에서 이들 정치적인 제도의 구조(국가, 정체)는 새로운 생산 양식이 야기하는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그때그때 끼여든다. 나는 이 자본주의에 너무 긴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의 눈, 곧 '아시아의 눈'을 갖는 게 가능할지를 더 물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형성

자본주의의 문제는 국민국가들 간의 문제이고, 이는 다시 국가와 자본주의간의 관계를 더더욱 복잡하게 만들어왔다. 우리는 냉전을 바로 그 관계 안에 위치시켜놓고 보았다. 냉전은 마음의 환상이라든가 선동선전, 아시아인들이 미국을 깎아내리기 위해 지어낸 허구가 아니다. 그 냉전을 잔혹하게 겪어야 했던 민중들에게는 더더군다나.

냉전은 또 다른 자본주의 현상의 새로운 부상이었다. 자본주의는 국민국가 안에서 발생하고, 국가 경제 안에서 발전한다. 그 속에서 자본주의는 또한 한계도 갖는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생산양식으로서 모든 걸 다 감싸 안기 때문에, 자연히 일개 국가 영토의 바깥으로 확장해 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제1차 대전(제1차 자본주의 전쟁에 다름아니었던)은 새로이 부상한 자본주의들이 영토, 시장 등을 놓고 격돌한 사건이었다.


http://library.thinkquest.org
1600년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설립된 동인도 회사는 1783년까지 동인도 전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초기 자본주의는 식민주의처럼 식민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다. 따라서 식민 지배자와 식민지 간의 관계도 변화했다. 영국은 인도에 근대 철도, 근대 교육, 산업 등을 제도화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동양회사라는 무역회사를 통해 무역했다. 그들은 그러나 인도가 줄 수 있는 무한한 자원을 더 잘 약탈하려면 금, 은 등을 더 많이 내가야 하리라는 걸 깨달았다. 당시 인도는 부유했고, 향신료, 섬유 등 줄 것이 많았다. 관계는 서서히 불평등한 관계로 변해갔고, 무역은 근대적 인프라의 이식을 통한 대규모 약탈로 변질되어갔다.

자본주의가 처음 발생할 때 흥미로운 것이 바로 이점이다. 약탈은 복잡한 과정이다. 약탈 과정에서 피약탈지의 법질서와 부딪치고 갈등하면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자본주의는 이 소모를 못견딘다. 약탈은 따라서 자본주의적인 법 질서의 확립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지역 안정성이 보장되어 있어야만 정상적인 자본주의적 생산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그래서 인도를 더 이상 약탈 대상이 아니라 '천연자원 산지'이자 '시장'으로 취급했다. 인도의 주요 도시인 봄베이, 마드라스, 캘커타는 모두 항구도시이다.

자본주의 국가 간에서도 갈등이 생겨났는데, 저마다 시장 또는 자원산지로서 식민지를 원했기 때문이다. 길게는 1960년까지 유럽 자본가들이 아프리카에서 싸운 이유도 이것이었다. 라틴 아메리카도 오래도록 싸웠다. 신흥 자본주의국 간의 싸움, 이것이 첫번째 전쟁이라면. 두번째 전쟁은 자본주의국 간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는 협의였다.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전지구적인 평화(권력 균형)를 요구한다. 냉전은 이 시기의 산물이다. 중국, 한국, 러시아가 서로 그냥 싸우지 않는 평화가 있어야 하느냐, 아니면 미국이 그 평화를 지키고 보장해주는 그런 평화가 자리잡아야 하느냐의 문제. 오늘날 아프카니스탄, 이라크도 마찬가지 문제에 연루되어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생산양식만의 차원을 넘어섰으며, 이제 국민국가 경계의 틀 안에서는 지탱이 되기 어려운 현실 속에 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부상 - 이 모순 덩어리가 새로운 전쟁을 불러일으키며, 이라크전은 그 산물이다. 이라크의 자국 석유를 보존하려는 움직임, 원유 수출 대금을 유로화로 결제하려는 움직임 등이 미국의 국익과 정면으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이 배경을 아시아로 가져가 보자.

자본주의 개발은 아시아에서 왜 하필이면 개발독재라는 형태를 취해야만 했는가? 민주주의의 역할은 무엇인가? 개발은 민주주의 발전을 요청하는가 아니면 저해하는가?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이는 아직도 계속 진행 중인 문제들이다.


코넬대 자료실
일본의 패전 며칠 뒤, 히로히토와 맥아더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

아시아의 정치적 경제인 이 '아시아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개발독재를 발생시킨 특이한 요소들은 무엇이었는가? 한국,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등. 중국도 일당 독재를 통해 유지했고, 일본마저도 제2차대전후 맥아더의 군정이 만든 헌법은 공산주의 운동이면 교묘하게 배제시켰다. 그 헌법은 한편으로는 사회 근간이 되는 봉건 잔재를 바꾸기 위해 토지 개혁을 제도화했다. 두번째로는 대의 민주주의제를 표방하면서 자본주의 발전에 해가 될만한 다른 위험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새로운 균형상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아직도 일본인들은 그 아래 짓눌려 있다.

개발독재의 두 차원

아시아에서 자본주의는 '뒤늦은' 자본주의였다. 식민주의의 일부로서 왔거나, 자본팽창의 결과로서 왔거나. 뒤늦은 자본주의의 한 중요한 특징은 불균등한 개발이다. 도시는 농촌보다 개발이 빠르고, 농촌도 어디는 개발이 빠른 반면 어디는 느리다는 것. 정체와 관련해서 이 불균등 발전은 케인즈 경제학이 말하듯 '국가는 관리자'라는 관점을 고수한다. 국가는 완벽한 중립으로서 어떤 바이어스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국가는 자본주의의 관리자이기도 하므로 그런 이상적인 국가는 실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는 불균등 발전이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만큼 심각한 사회 문제는 일으키지 않도록 단속해야 할 막대한 임무를 수행하며, 이는 개발독재의 한 차원이다.

또 다른 차원은 아시아 국가가 대게는 농촌 사회라는 사실에 있다. 자본주의에서 중심이 되는 요소는 물론 자본이며, 자본은 돈, 재화, 생산력(공장, 기술, 등등)이다. 농업사회에서는 부가 토지에서 온다. 따라서 토지의 불균등한 분배는 이후의 불균등 발전으로 이어진다. 한국, 대만은 일본의 식민 지배 아래, 일본은 미국 점령으로, 중국은 혁명의 결과로 토지 개혁이 실시되었다. 다른 곳에서는 토지 개혁이 그다지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태국은 중요한 농업 자본주의 국가로서, 예외적으로 왕이 토지를 오랫동안 분배, 생산, 관리해왔고 오랫동안 쌀 생산국이자 수출국이었다. 태국의 군부독재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태국에는 산업 부르주아지가 없었는데, 그게 없이는 국가의 정체(state)란 것도 존재할 수 없다.

독재의 바탕: 국가 엘리트의 합의

국가는 자본주의 계급 관계를 감독, 경영한다. 그러려면 중요 계급을 이루는 산업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 태국의 개발 독재 형태는 군부독재였다. 군부는 어떤 계급도 대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군부는 자본주의 국가의 무기, 자본 계급의 도구, 자본 계급의 발전을 지키는 국가의 무기라는 기능을 가지고 독재에 공헌한다. 한국도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곧바로 민주정부가 들어설 수 없었는데, 우연이 아니었다. 이미 냉전 파트너를 바라는 미국의 이해 등, 군부독재를 허용하는 조건이 생겨나 있었다.

독재의 조건은 대부분 바로 그러한 이해관계 아래 생겨났거나 아니면 자본주의 발달을 위한 초기 생성이 없어서 생겨났다. 인도에 들어온 영국은 철도를 원했는데, 철도 건설은 철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세균과 같아서 먼저 적당한 배양 환경을 필요로 하는데, 철도, 철강 산업이 자본주의 발달을 위해 알맞은 초기 조건 없이 그냥 자라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상업 자본주의는 공업 자본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아이러니이기도 한데, 인도 식민지 자본주의의 개발은 인도 부르주아지 계급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 계급이 이후 민족주의 투쟁의 주요 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도에서는 영국에 대한 혁명이 아니라 평화적인 주권이양이 있었다. 혁명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영국, 인도 양국의 자본주의적 이익에 더 부합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를 보라. 평화롭게 주권 이양이랄 만한 것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숱한 문제에 파묻혀 있다. 이 나라는 금, 토지 등, 인도보다 어쩌면 훨씬 더 부유했을 것이다. 그곳에서도 자본주의 식민주의자들은 우리 대 그들의 구도를 제도적으로 확립했고, 아파르트헤이트는 그 제도화된 형태였다.

독재는 다양한 형식을 취한다. 아시아에서는 내부 엘리트의 동의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산업 부르주아지가 없다는 것이 곧바로 엘리트가 없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군부, 이것도 일종의 엘리트이다. 관료, 엘리트의 하나다. 태국도 한국도, 독재 형태는 군부와 관료의 융합이었다. 법적 인프라, 행정 시스템 등, 군부는 관료와 엘리트 내부의 동의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토지개혁이라는 난제


시민의신문 자료사진
칼 폴라니(1866-1964)

칼 폴라니를 나는 맑스 버금가게 좋아하는데, 그는 자본주의 국가의 출현과 그 조건을 논구하면서 특히 '공공재(Commons)'의 파괴와 사유재의 도입을 지적했다. 영국 근대사를 보면 이전에는 아무도 소유하지 않은 토지 공공재가 있었다. 유명한 엔클로저(사유화) 운동으로 그 시기는 끝난다.

지난 12월 말 아시아를 휩쓴 쓰나미 또한, 피해 해안이 사유화되어있지 않았더라면 피해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남인도 해안은 예전엔 사유재산이 아니었다. 나도 해변에서 자랐다, 사람들은 해변을 맘껏 이용했었다.

어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바닷가를 단 한번도 '소유'한 적이 없었고, 따라서 해안가든 바다든 모두 일종의 공공재였던 것이다. 바다를 공공재로 여긴 사람들은 물때를 알았을 뿐만 아니라 언제 고기를 잡고 언제는 고기를 잡지 말아야 할지를 알았다. 그러나 사유화된 자본주의적 고기잡이는 그런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 곳에서나, 언제고 내키는 대로 어업행위를 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삶의 토대를 허물어뜨린다. 폴라니는 재분배 사회에 대한 반대, 그리고 공공재의 엔클로저가 자본주의 국가 출현의 조건이자 국민국가의 조건이라고 봤다.

불균등한 토지 개발 문제가 발생할 때 독재를 통해 지배를 용이하게 하자는 것이 사회 엘리트의 콘센서스이다. 물론 재분배 사회에 대한 동의는 없다. 예를 들어 필리핀에서는 대규모 봉건 지주의 문제가 아직도 심각하다. 농민 저항이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계속 일어났다. 공산주의 투쟁은 그것대로 이 '엘리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에 점차 퇴색되어 갔다. 결과적으로 토지 분배 문제를 해결해낼 수 없었다. 파키스탄도 마찬가지다. 군부독재가 성행할 수 있는 건 파키스탄이 아직도 봉건 토호들의 막강한 세력들로 짜여진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봉건 토호들의 단합은 재분배 사회에 대항하는 엘리트들의 동의로 움직이는 그런 국가를 만들어냈다.

인도는 더 한층 흥미롭다. 인도의 부르주아지는 토지개혁을 제도화했다. 토지개혁이란 무엇인가? 일단 토지에 대한 일정한 재분배가 이루어진다. 토지는 자산이 되고, 대규모 지주도 소작농노도 사라진다. 사회학적인 요인을 보면, 대규모 지주라는 토지소유의 방식이 자본주의적인 토지 개발에 비효율적인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토지의 비생산적인 이용은 성장의 효율을 따지는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토지개혁은 사회적, 경제적인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만 안정적일 수 있고 또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인도는 토지 개혁이 공산주의가 기세를 잡은 두 개 주(케랄라, 서벵골)만 빼고서 일어났다. 언급했듯이 부르주아지가 아래부터 농민 혁명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토지개혁을 원했던 것이다. 농민 혁명에의 가능성을 없애는 선까지만 일어났던 그 최소한의 토지개혁은 그러나 전반적인 경제적 근대화를 이끌어내기엔 부족했다. 경제적인 근대화가 성공하려면 전면적인 토지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식량생산의 효율성과 저임금 정책의 관계

인도네시아는 자바 섬에 사는 주민들을 더 먼 섬으로 이주시키는 것으로 이 토지 재분배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인도 부르주아지는 인도 자본주의가 안정적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토지 개혁을 실시했고, 그로부터 산업 자본주의가 발흥하기에 충분한 생산력을 이끌어냈다. 충분한 생산력이란? 내가 자본가여서 산업체를 갖고 싶을 때 필요한 것은 첫째, 사업을 시작할 자본금으로 자본의 한 형태로의 투자, 기술 등이다. 또 다른 형태는 임금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나는 임금을 줘야 한다. 그래서 투자는 고정 자본(공장, 자재, 등), 그리고 임금 같은 비고정 자본의 재투입으로 이루어진다.

식량 생산이 감소했다 치자. 식료품을 구입하는 데 돈이 많이 들 것이다. 이는 임금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임금이 오르면 자본가들이 지출해야 할 돈이 더 많아지며, 그렇게 되면 이윤은 감소된다. 따라서 임금을 계속 낮은 선에 두려면 식량 가격을 낮게 둬야 한다. 식량 가격을 낮게 고정하려면 생산자들이 식량을 더 싸게, 또는 더 효율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인도는 농부들에게서 양곡을 비싸게 사들인 뒤 시장에 싼 값으로 푸는 식으로 해왔다. 자본가들이 지불해야 할 부분을 정부가 지불한 것으로, 자본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그 비용을 국민 세금 등을 이용해 충당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방식은 더더욱 효율적인 생산인데, 더 작은 땅을 더 집약적으로 이용해서 더 높은 생산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토지 개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했다.

중국의 토지 개혁은 토지 개혁 법을 시행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바탕에는 물론 그걸 가능하게 하는 요인인 토지 개혁에 대한 민중의 요구가 있었다. 인도의 케랄라도 농민들이 먼저 들고 일어난 경우다. 필리핀에서는 아키노 이후 꽤 괜찮은 토지 개혁이 실행되었으나 실질적인 토지개혁은 일어나지 못했는데, 개혁이 순전히 관료적인 법령에 그쳤기 때문이다. 식민체제 하의 한국이나 대만처럼 실제로 발 벗고 나서서 그 법령을 실행하는 국가(행정적 조직체)가 없었다. 필리핀에는 대규모 토지 소유 엘리트층이 두텁다, 아키노도 몇 천 에이커가 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대지주이고. 대지주가 무엇이 아쉬워서 토지개혁을 제도화하겠는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말이다. 산업 부르주아지가 판단한 것은 반대로 필리핀의 자본주의가 살아남으려면 토지 개혁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리핀에서 그 산업 자본가들의 층은 매우 엷었다.

'토지' 안에 숨은 모순

왜 필리핀 등 남아시아의 국가들과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같은 나라들은 계속 가난한 국가로 남아있어야 하는가? 유럽의 폴란드나 포르투갈처럼 말이다. 두 부류 모두 토지 문제의 해결이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되는 농업국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 토지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자본주의적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관점. 자본가, 지배계급, 시장 등이 행하는 민주주의적 임무는? 의회 민주주의, 공평한 법정, 등등일 것이다. 이런 것들은 제도이고 기관이다. 사회, 경제적으로는 바로 토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부르주아 자본가 계급에 맡겨진 민주주의적 임무였다.

혁명기 러시아에서는 노동자 계급과 농민이 같이 들고 일어났고, 토지 문제도 이 두 그룹 사이에서 해결되어야 했기에 둘 간의 제휴가 필요했다. 레닌 시절 인민주의자(나로드니끄)와 볼쉐비키들 간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되겠다. 맑시즘의 문제는 농민계급을 후진적인 것, 노동자계급은 선진적인 것으로 봤다는 데 있었다. 이건 이상한 관념인데, 농민들은 사실 매우 선진적인 계급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중차대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 토지 문제로 늘 돌아오기 때문이다. 소비에트는 이 토지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없었다.


러시아의 문화혁명
소비에트 혁명 직후인 1920년대, 한 공산당 선동가가 농민들 사이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토지 문제는 라틴 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등에서도 문제였다. 대부분의 나라가 신자유주의적 해결책으로 빠져버리고 있다. 토지 문제는 전지구적이든 국가적이든, 결코 자본주의가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이다. 농지는 재화일 뿐 아니라 자연이기도 하다. 이 사실이 자본주의에는 궁극적인 모순이 된다. 하버마스의, 비판이론(다음번 강의의 주제가 될 텐데)에 의하면 인간 주체성 자체가 자연이면서 자연 아니기도 한 모순을 안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토지 또한 재화이면서 자연이라는 모순을 갖고 있고, 맑스는 그 모순성을 천재적으로 포착했다. 자본주의 사회 생산력의 바탕인 돈이 지닌 모순성을 그리고 있는 <자본론> 첫 부분을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 어떤 문학작품도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을 것이다. 돈은 재화이면서 자본이다. 이 돈의 번역(사회적인 발현을 겪는 과정)이 모순적이어서 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왜 세계화가 성공하지 못할 것인가?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이 모순을 극한으로 치닫게 만들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사유화하고자 하는 많은 것들이 그저 재산일 뿐만 아니라 공공재이기도 하다. 물도 재화이면서 자연이다. '토지' 자체 안에 문제(모순)가 내재되어 있다.

필리핀의 문제: 수출 위주 종속 경제

다음으로 문제는 아시아에서 토지가 어떻게 재화로 개발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아시아에는 농업국가가 많다. 그러나 토지 문제를 해결 못한 나라 또한 많아서, 오늘날까지 사회, 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근대 중국은 농민혁명에서 배태되었는데도 오늘날 고속 산업화에 휘말려 농민이라는 존재를 부정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필리핀의 토지 문제는 인도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그러하다는 사실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정치적 경제의 역사이다. 독자적인 부르주아 층이 형성되어 있었던 인도에서는 독립 직후 인도 경제가 전적으로 농산물 수출에 기대서는 안된다는 결의가 있었다. 네루 등 지도자들은 농산물은 수출 총량의 40%를 넘지 않도록 했다. 71년에 차 값이 폭등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차를 팔라는 요구가 쇄도했지만 간디 여사는 안된다고 버텼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나라 경제가 계속 차 수출에 종속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커피 또한 수출을 통한 주 수입원이 되지 않도록 했다. 대신 제조업을 키웠으며, 이것이 오늘날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기술제조 산업국이 된 인도의 경제 성장의 비결이다.

필리핀은 농산물 수출에 전적으로 기댔는데, 설탕이 바로 그것이다. 설탕가격이 폭락했다. 단위당 10달러에서 50센트 이하로 순식간에 떨어졌다. 설탕 농장주들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고, 노동자들은 쫓겨났다. 미결된 문제들이 정치적이지만은 않다. 모든 문제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자기 토지에 고용을 늘려 생산력 증가하는 게 아니라, 전세계로 흩어져나간 이민 노동자들이 임금을 본국으로 송금하게 하는 식으로 경제를 키워왔다.

필리핀의 문제 2: 이주 노동자들

물론 이주 노동은 아시아의 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1900년대에 북부 인도 펀잡 지방의 (터번 두른) 시크인들이 대규모 캐나다로 이주했고 지금도 다수가 거주한다. 펀잡은 현재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농산지로, 농업방식이 미국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선진 농업 장비를 갖춰 감자 같은 작물을 대규모로 키우는 것이다. 이주자들이 벌어들인 돈은 모두 농업에 투자되었다. 그 부유하다는 유럽의 스웨덴도 마찬가지이다. 스웨덴은 이주자가 거주자보다 실제로 더 많은 나라이다. 잭 코즈비(Jack Cosby)가 쓴 <생태적 제국주의(Ecological Imperialism)>라는 뛰어난 책이 있는데, 유럽 이주민이 지금까지도 다른 어떤 지역의 이주민보다 수적으로 월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주는 내부적으로도 일어난다. 농촌이 생산적이지 못하면 농촌인구를 도시로 유입, 임금노동자화하고, 그래서 임금이 내려가면 그것으로 산업 성장을 촉진시킨다. 박정희 시절 농촌 대 도시 비율은 5년 만에 기존의 70 대 30에서 30 대 70으로 급격히 변했다. 내가 맨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시골에서 갓 상경한 사람들이 교회 주변에 천막치고 지내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개발독재의 한 얼굴이다.

필리핀은 국내 이주가 해외 이주보다 적었다. 해외 이주자들이 보내오는 돈은 당연히 은행으로 간다. 은행주들은 누구였는가? 대규모 지주들이었다. 코코넛 농장주들이 은행도 소유한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우리는 그걸 '코코넛 은행'이라 불렀었다. 계급 이해가 금융으로도 작용했다. 이민 노동자가 벌어들인 돈은 생산적인 분야에 투자되지 않았다. 80년대에 필리핀에 처음 갔을 때 나는 국가의 빈곤과는 상관없이 시내에 휘황찬란한 고층빌딩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걸 보고 무척 놀랐다. 그 돈이 다 어디에서 왔겠는가? 결국 사회 엘리트가 인민의 돈을 그렇게 쓴 것이다. 스리랑카의 부르주아도 마찬가지였다.

필리핀의 미래는 제조업도, 농업도, 숙련 노동자의 수출도 아닌 이주 노동자들의 임금 송금에 달려있다. 필리핀의 자본주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크게 기대어 있고, 따라서 전지구적 권력구조에 전적으로 매달려 갈 수 밖에 없다. 부시가 요청하기도 전에 이라크 전에 자국 군대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녹색혁명, 막다른 탈출구

개발독재의 조건을 지속적으로 형성한 것은 바로 토지 개혁과 연관된 이러한 문제들, 그리고 이에 결부된 재분배 사회에의 저항이었다. 자본주의는 발전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사회 밑바닥에는 실질적인 문제들이 깔려있다.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마르코스는 이를 관료주의적인 개발 독재로 극복하려고 했고, 녹색혁명이 제도화되었다. 녹색혁명은 특히 아시아에서 농업 자본주의의 제도화와 연관되어 있는데, 특히 사회적인 조건이 그걸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농업 효율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녹색혁명은 제국주의와도 연관이 있다. 제국주의는 만일 농촌사회의 조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아시아는 늘 농민혁명의 가능성에 시달릴 것이라 우려했다. 혁명은 어떤 혁명이나 제국주의에는 치명타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맑스주의자들은 농촌 사회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 또한 서구중심주의의 피해자였고, 어찌 보면 '아시아인'이라고 할 수조차 없었다.

사회변화의 제일차적인 조건은 농민혁명가들에게서 왔다. 사회밑바닥으로부터의 운동만이 엘리트의 독점적 권력 상태에 변화를 일으켜왔다. 현재 맑스주의는 마치 박물관처럼 변해가고 있다. 인도에서도 맑스주의 당이 살아있는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케랄라, 벵골, 트리푸라 같은 지방에서 그들이 농민계급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기술적인 개입은 토지관계를 변화시킬 사회적인 조건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혹은 조건은 형성되어 있어도 그 변화가 나중에 엘리트가 사회에 대해 갖는 독점적인 권한에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하는 사회 그룹이 있다면 절대적인 요청이 된다. 녹색혁명은 그 결과물이다. 녹색혁명은 실로 여러 가지에 연루되어있다, 제국주의, 토지개혁, 록펠러 등등. 록펠러는 은행가이자 석유 산업의 투자자였는데, 이미 1900년대 초반에 석유라는 원자재의 이용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꿰뚫어보았다. 여러분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농약도 원유 가공을 통해 생산된다. 나도 젊었을 때 비료를 생산하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 ‘텍사코’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자본주의의 돌파 방식의) 다른 한가지는 한 나라를 군부독재 등,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방식으로 다스리는 것인데,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나라를 계속 물리적인 공략으로 통제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겪는 어려움을 떠올려보라. 전지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자본은 한 나라를 순전히 군사적인 수단으로만은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군사력 외에 또 다른 매우 강력한 통제수단이 있었는데 바로 식량이었다. 만일 식량, 식량 증산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오늘날 식량 안보'란 용어로 통칭되고 있는데)- 그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진 무기란 있을 수 없었다.

녹색혁명과 식량 통제

녹색혁명이 제국주의와 연관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선진 자본주의 체제의 금융 자본가들이 투자 등을 통해 자신들이 식량 생산을 실제로 통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는 사실에 있다. 국가 내부적으로는 농민혁명, 사회혁명을 미연에 막는 것에 그 목적이 있었다. 사회 엘리트가 누리는 권력관계의 변형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 이는 궁극적으로 전지구적 자본주의, 또는 제국주의에 위해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국내 부르주아지의 관심은 둘이었다. 하나는 시급한 사회 문제들을 처리하는 것. 그러나 이들은 사회의 진짜 문제, 정치적인 경제의 문제는 건드리지도 않는다. 내부적으로 녹색혁명의 정치적 경제는 우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 변화로 방향을 돌리는 것에 있다. 녹색혁명은 또한 곡물 생산에만 치중하는데, 아시아에서도 곡물만이 식량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다(사실 식량은 우리가 어떻게 탈-아시아화되어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환상적인 창이다. 사회인구의 질병 패턴의 변화를 보면, 가령 결장암, 신장암 등이 늘고 있는데, 서구 식민주의, 오리엔탈리즘이 어떻게 우리 뱃속까지 점령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녹색혁명은 곡물을 최대한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고자 한다. 그렇게 곡물 생산 비용을 낮추면서 저임금을 위한 사회적인 조건을 창출하는데, 이 저임금은 제국주의,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독재 체제도 저임금을 보장하는 한 방식이다. 전태일의 서사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어떤 땀과 피를 발판으로 해서 이룩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독재는 노동자들의 단합과 임금상승을 막는다. 홍콩은 '터치 베이스' 정책을 유지했다. 중국이든 어디든 이민자들이 들어오는 걸 막지 않았는데, 노동자가 남아돌면 돌수록 저임금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임금 유지 방식의 첫번째가 식량을 싸게 공급하는 것이고, 두번째가 독재를 통한 것이고, 세번째가 이주 노동자들을 창출하는 것이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도 한국도 말로는 불법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한다지만 실제적으로는 어떤 제재나 관련 법률도 마련해놓고 있지 않은데, 사회가 그러한 잉여 노동력을 가져야만 노동자들의 임금을 전반적으로 낮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재의 자본주의적 조건들: 필리핀, 싱가포르의 경우

다시 개발독재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태국, 필리핀, 한국 등에서 이 개발독재를 반대하는 투쟁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들. 한국은 80년대의 광주, 80년대 말, 90년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는 확립했고,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를 성취하긴 했지만 이를 지탱해줄 사회 조건이 날로 변해가고 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같은 문제가 남았다. 전자는 토지 문제가 '대농장(plantation) 자본주의'(고무 등)와 직결되어 있다. 고무는 설탕과는 달랐다. 필리핀은 중요 수출품목으로 설탕이라는 농업 재화를 내세웠는데, 쿠바, 설탕 대체제 등으로 인해 국제 설탕 가격이 폭락해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영 제국주의는 서로 다른 식민지가 서로 다른 원자재를 생산하도록 배려했다. 스리랑카는 차, 말레이시아는 고무, 자바는 티크 원목, 등등. 고무 생산을 위해 필요한 '근면한 노동력'을 영국은 (말레이 사람들은 게을러서 일하기를 싫어한다면서) 인도의 타밀나두에서 유입해들였다. 말레이인들은 그저 작고 자급자족적인 삶을 영위했던 것뿐이었다. 그들이 영위하던 삶에서는 모든 것이 충분했다, 왜 죽어라 일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모든 이가 그렇게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가면 자본주의는 무너진다. 그래서 특정 형태의 생산은 법으로 금지되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공업 자본주의는 자급자족적인 토지 산물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라오스 같은 경우, 작지만 자급자족적인 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한 사회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손길이 이미 곳곳에 뻗치고 있다: 메콩 강을 개발해라, 그래서 태국에 팔아라, 돈을 더 벌어라, 등등.

농지는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는 쓸모없는 땅이다. 자본주의 연쇄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고무를 영국 식민지들에 팔았고, 영국은 다른 식민지로부터 말레이시아에 이주 노동력을 들여놓았다. 가령 인도인들은 어디에나 갔다. 필리핀 세부 섬에 가면 인도인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데, 영국이 한때 4백 명에 달하는 영국 군대를 거느리고 그곳에서 스페인들과 싸운 일이 있다. 물론 인도인들도 동원되었는데, 전쟁이 끝나자 인도인들만 그냥 그곳에다 놔둬버리고 온 것이다! 그렇게 떨구어진 인도인들이 그래서 그곳에서 번식했다. 식민주의는 자기가 필요한 곳 어디에나, 어떤 사람들이든 그야말로 '식민(植民)'할 수 있다.

여기저기로 흘러 들어간 중국인들은 세월을 거치면서 상업 자본가로 성장했다. 그 결과 1960년대 말레이시아에서는 꽤 잦은 인종갈등이 벌어졌다. 중국인과 말레이인, 인도인과 말레이인 등. 어떻게 해결했는가? 말레이시아 자본가들은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개발독재의 뿌리가 있었고, 마하티르는 그 새로운 말레이시아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이는 '부미 푸트라'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바로 '말레이 본토인만이' 경제 개발에 관한한 모든 권한과 통제권을 쥐어야 한다는 정책이었다. 이 법을 실제로 비본토인인 중국인, 인도인들에게 시행하려면 개발독재가 필요불가피했다.

중국인들은 또 싱가포르로 많이 유입되었다. 현재 위대한 정치가 행세를 하고 있지만 리콴유도 근본은 중국 마피아이다. 과거에는 중국 마피아가 인구(노동력) 이동을 관리했다. 그들은 일종의 인력 공급업자였다. 싱가포르는 선거구를 재분할해서 어느 선거구든 대다수는 중국인이 되도록 선거법을 고쳤고, 말레이인들은 엄혹하게 차별당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앙트르뽀(창고)' 자본주의로 발전했다. 나라 전체가 온갖 재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일종의 창고인 셈이다. 젊은이들도 고국에 붙어있지 않는다. 인구 이동, 변화 통계가 싱가포르에서는 국가 기밀이다. 그런 곳에서 자본주의가 계속 발전하려면 일종의 '영속적인 독재'가 있어야 했다.

싱가포르 자본주의는 두 가지 문제를 낳았다: 인구 변화, 출생률 저하. 농업사회와 달리 현대 자본주의 산업사회는 많은 인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갈수록 더 많은 수가 생산에서 서비스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결국 고령사회 문제를 낳았다. 자본주의를 경영할 충분한 인구를 못갖고 있다면 그건 문제가 된다. 더 우수한 젊은이들을 붙잡아 앉혀놓기 위해 싱가포르는 우생학적인 정책을 실제로 펼치고 있다. 그래도 문제가 없어지질 않는다. 버나드 쇼의 유명한 농담 있잖은가? 한 아름다운 여배우가 '당신의 기지와 내 미모가 결합된다면 얼마나 멋진 아기가 나오겠느냐'며 결혼을 신청하자 버나드 쇼는 '당신의 기지와 내 외양이 결합된 애기면 어떡하겠느냐'며 사양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싱가포르의 문제이다(학생들 폭소).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한 모델은?

민주주의 투쟁은 시민대중이 독재에 염증 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간은 원래 비자유, 구속상태를 못견뎌 한다. 학생, 노동자, 시민 할 것 없이 말이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내가 여기서 또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다른 아시아인들이 한국의 경제적 발전 뒤에 숨은 그 긴 투쟁 과정과 그로 인한 희생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여기 앉은 여러분은 그걸 바깥에 알려야 할 임무가 있다. 관제적인 역사는 국가 경제 발전의 이유를 그저 한 민족의 근면성실한 노력 정도에 돌리는데, 이는 인간을 그리는 정직한 태도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일을 안 할 때는 단순히 그 사람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거기에는 사회구조적이거나 그 외 허다한 이유가 따른다. 그 사람이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을 더 하고 싶어 한다든지.

자본주의는 실제로 '더 생산적인 노동력'을 그렇지 못한 것과 구분한다. 아시아 사회에서 가령 학교 선생은 대게 여성인데, '더 생산적인' 남성은 산업전선에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자유로운 인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간디 여사가 권좌로 돌아오기 직전, 사람들은 '인도인들은 자유보다 빵을 중시하므로'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으리라고 점쳤다. 결과를 보니 인도인들은 '빵을 갖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경제학자 아마티야 센도 마찬가지 얘기를 한 바 있다. 그는 "기아, 홍수, 기타 재난을 방지할 기초적인 조건이 바로 민주적 권리들의 보장에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적 권리를 지닌 인간만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민주적인 권리가 없으면 '배고프다'라는 말을 할 수조차 없게 된다.

싱가포르의 모델은 (개발,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가능한 모델인가? 이 나라는 국민국가도 아닌 도시국가가 되었는데, 가령 소비 가능한 물의 60퍼센트가 말레이시아에서 오곤 했다. 경제적인 조건 자체가 싱가포르를 가능한 모델로 만들지를 않는다. 마지막 시간에 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개발 등과 더불어 '아시아적 가치'와 연관된 문제를 상세히 논할 것이다. 아마티야 센의 <인권과 아시아적 가치(Human Rights and Asian Values)>라는 1997년 논문이 있다, 참고하기 바란다.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위하여

싱가포르도 태국도, 갈등은 끊임없이 생겨나는데 민주주의는 계속 침해당하고 있다. 말했듯이 민주주의의 증대는 국가 엘리트의 권력균형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공공 영역(public sphere)'을 늘리려고 하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사유화에 큰 위협이 된다. 공공영역은 시민 대중이 소유할 수 있는 것, 대중에 의해 소유된 것, 가령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사람들이 몰려나왔던 광장 같은 공간이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일 뿐 아니라 정치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독재 치하에서는 이 공간이 극히 줄어들게 되는데, 한국은 7,80년대 독재 시절 그러했고, 중국은 현재도 인터넷(공공영역이다)까지 통제하고 있다. 이 공공영역에 대해서는 하버마스가 많이 논했다. 엘리트 집단의 목적이 충족되려면 독재의 거버넌스가 생겨나야 한다. 이는 공공영역의 축소, 민주주의의 파괴를 가져온다. 따라서 공공영역이 늘어나면 민주주의도 늘어난다. 달리 말해 민주주의 투쟁은 엘리트 자본주의 대 공공영역 확장 간의 투쟁이나 마찬가지이다. 지난 인도 총선에서 왜 지배 BJP당은 또 패배 당했는가? 이 당만이 계속 엘리트 지배층의 권리를 싸고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공영역을 확장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이것을 사회 엘리트의 콘센서스로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갖춰져 있지만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죽어있는 사회를 많이 본다. 정치적으로 생명이 없는 사회 말이다. 서구 자본주의 모델은 형식적인 민주주의만을 원한다. 지금의 이라크가 그렇다. 미국 점령청이 총선을 통해 그곳에 자리 잡히기 원하는 것이 바로 형식적인 민주주의인데, 이 형식은 그 나라의 실질적인 민주주의 발전에는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해가 되는 것이다.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널리 이해, 증대시켜야 한다. 그것만이 사회 엘리트 계급의 이해를 지속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끊임없는 제도화, 거기에 길이 있다.

참고자료

내가 이전에 쓴 논문 두 건을 주겠다. 하나는 환경주의와 민주주의와의 관계에 관한 <환경파괴와 시민공의: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한 함의들(Environmental Degradation and Social Justice: Implications for Democracy in Asia)>이다. 환경주의자들이 저지르는 잦은 실수는 모든 것을 환경만의 문제로서 생각하려는 경향에서 오는데, 실제로 문제는 민주주의에 직결되어 있다. 환경이 민주주의에 중요한 것과 똑같이 민주주의는 환경에 중요하다. 캐나다 퀸즈 대에서 있었던 세미나의 발제문으로, 이번에 두 권 책(edt. By Fahimul Quadir & Jayant Lele, <<민주주의와 아시아의 시민사회- 세계화, 민주주의, 아시아의 시민사회(Democracy and Civil Society in Asia - Globalization, Democracy, and Civil Society in Asia)>>, Palgrave Macmillan Ltd., 2004)으로 묶여 나왔고, 내 발제 바로 뒤에 한 캐나다 교수가 요모조모 반박하고 있다, 참조하기 바란다.

또 다른 논문(<과학, 역사, 책임(Science, History, and Responsibility)>)은 이전에 인도에서 공저, 출간된 책에 써준 서문인데, 제목은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 과학자, 환경주의자, 철학가들 간의 대화(The Stories they tell: Dialogue between Scientists, Environmentalists, and Philosophers)>이다. 이들 모두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그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흘러나온다. 쓰나미를 보면 상이한 그룹마다 상이한 이야기가 있다. 농부에게도 군대에게도 그들대로의 이야기가 있다. 이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사회, 특히 아시아 사회의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우리에게는 또한 식민지, 군부독재 등 우리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좋은 스토리텔링과 나쁜 스토리텔링이 있는데, 전자에는 민주주의적인 기능이 있다. 지식을 전달하고, 치유하며, 우리 모두를 좀 더 나은 존재로 가꿔준다.

국가가 행하는 스토리텔링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 개발독재, 녹색혁명 등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뤘다. 이런 이야기들은 여러분이 개발독재에 반대되는 어떤 것을 더 잘 상상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보조물들인 셈이다. 가령 인도의 보팔 사태도 녹색혁명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사고가 난 보팔의 그 공장은 살충제를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원래 캐나다에 있었는데 낙후된 시설을 저임금 지대로 이전하면서 인도네시아로 가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에 인도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 보팔로 가게 된 것이다. 참사의 결과는 여러분도 들어 잘 알 것이다. 수천 명이 죽었고, 지금도 한 주에 네 명 꼴로 죽어가고 있다. 거기에 20년을 곱해보라.

또 다른 생태 관련 논문이 있는데, 바로 원민족(ethnic) 민족주의에 대한 것이다. 다음 시간에 와 강의해줄 하버드 출신의 이란 학자 파르진의 강의 발제문(<이슬람, 모더니티, 갈등(Islam, Modernity and Conflict)>)도 있으니 같이 읽어두기 바란다.

강의=로렌스 수렌드라 dlsuren@yahoo.co.uk
정리=레베카 김 객원기자 rebecca@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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