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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연대
Subject  
   한국의 재식민화 서울의 검은 월요일 : 한국에서의 IMF 개입
한국의 재식민화
서울의 검은 월요일 : 한국에서의 IMF 개입
(The Recolonization of Korea - Seoul Black Monday : IMF Intervention in Korea)

미셸 초스도프스키(Michel Chossudovsky)

1997년 11월 말 경, 분쟁 조정관 허버트 나이스가 이끄는 IMF 경제팀이 갑가지 서울에 방문했다. 그들의 임무는 빠른 경제 복구와 안정성 회복을 중심으로 하는 멕시코식 경제구제를 한국에 제안하는 것이었다. 선례는 이미 많았다. 제 3세계와 동유럽에 반복적으로 부과된 IMF식의 비정한 경제 처방이 발전한 산업경제에 처음으로 적용되려던 순간이었다.

백악관은 서울의 미 대사관과 공조하여 세심하게 무대를 만들었다. IMF 대표단이 도착하기 약 한 주전, 김영삼 대통령은 이른바 IMF와의 협상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재경부 장관을 해임했다. 더 다루기 쉬운 사람이 워싱턴의 지시에 따라 지명되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새로운 협상가이자 재경부 장관이었던 임창열은 이전에 IMF와 월드뱅크의 이사회에서 일했던 인물이었다. 청와대 경제수석 김인호 역시 해임되었다. 그는 IMF 옵션을 거부했고 한국은 자력으로 국제 신인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새 재경부 장관 임창열은 미국적 배경에 친숙한 인물로, 지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전 동료이자 IMF 부총재 스탠리 피셔와의 협상을 위해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서울의 검은 월요일

이 시기까지 정부의 IMF에 대한 대처는 철저하게 행정부의 비밀로 지켜지고 있었다. 마침내 11월 21일 금요일, 정부는 IMF 구제 금융을 받게 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다음 주인 11월 24일, 한국의 검은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무너지기 시작한 주식 시장은 IMF의 엄격한 조치에 경색되었고 투자자들은 기업과 은행의 도산을 예상했다. 미국의 명령에 충실히 복종하는 임창열 재경부장관은 외환시장의 모든 환전 규제를 철폐했고, 그 결과 원화에 대한 투기 자본을 불러들이게 되었다.

이틀 후인 11월 26일, 허버트 나이스를 단장으로 하는 IMF 대표단이 서울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4일 후인 30일, 협상 당사자들은 이미 예비 협약에 동의했다. 초안은 대표단이 도착하기 전 워싱턴의 IMF 본부에서 기안되었다. IMF 내부의 정책적 대안들은 월 가(Wall street)의 금융자본과 미국 재무성과의 합의하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분석과 협상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강요

그러나 협상이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당시 선두를 달리고 있던 중도 좌파적 성향의 야당 후보 김대중이 IMF 구제금융 합의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국민에게 경계의 메시지를 전했고 김영삼 정권이 대한민국 경제를 통째로 외국에 팔아넘기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 때, ‘외국 투자가들은 26개의 은행, 27개의 투신사, 12개의 보험회사와 21개의 상업은행을 자유롭게 매입할 수 있었다. 이 금융 회사들은 한국 증시에 5조 5천억원 (37억 달러)에 공시 되었다.


정치적 반환점

이로부터 두 주 후 대선이 치러졌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강력한 경제조치를 위한 굽힐 줄 모르는 지지자로 돌변했다.  
그는 “나는 과감하게 시장을 개방하겠다. 나는 외국 투자가들이 자신감 있게 투자할 수 있도록 시장을 개혁해 가겠다.”고 했다. 대중연설에서 그는 개혁을 위해 IMF 고통에 대한 굽힘없는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했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반체제 인사이며 정치범이었으며 미국을 등에 업은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에 항거한 투사 김대중은 정치적 압박에 굴복하여, 한국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으로서 그의 첫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월가와 미 정부에 항복을 선언한 셈이다.


재정적 협박을 통한 입법 강제

김대중 정권은 또한 한국 의회에도 청신호를 주었다. 다음 날 12월 23일 국회 특별회의가 열렸다. IMF 협정에 관한 4대 정부 발의안이 논의 없이 통과 되었고, 재정적 압박에 굴복하여 재정경제부의 규제 감독 기능을 빼앗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 국회 의사봉은 권위를 잃고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이와 함께, 미국 금융의 이익을 대변하는 무디스와 월가의 신용 평가단은 한국 정부와 20개 주요 은행의 채권을 포함하는 회사채를 등급 외 채권 수준으로 떨어뜨려 한국 정부의 굴복에 일조 하였다.      


570억 달러짜리 구제금융 협상: 강도들의 시간표
1997년 11월 19일 - 1997년 12월 24일

11월 19일: 김영삼 대통령이 재경부장관 강경식 해임. 사유는 IMF 협상을 방해한다는 명목이었으며, 전 IMF의 이사였던 임창열이 재경부 장관으로 취임.

11월 20일: 임창열 재경부 장관이 그의 옛 동료이자 IMF 부총재 스탠리 피셔를 만나기 위해 워싱턴으로 날아감.

11월 21일: 대한민국 정부는 IMF와 협정 체결에 들어 갈 것임을 공식적으로 선언. 새 재경부 장관이 IMF 협상의 책임자로 내정.  

11월 24일: 서울의 검은 월요일이 시작. 한국 증시는 10년 내 최저치를 기록하였고 투자자들은 IMF의 엄격한 규제에 경색되었으며 기업과 은행의 도산을 예상.

11월 26일: 허버트 나이스가 이끄는 IMF 협상단이 서울에 도착.

11월 27일: IMF 협상단과 한국정부 협상단이 비밀 협상에 들어감.

11월 30일: 협상 나흘 후, IMF와 정부 협상단은 예비 협정에 합의.

12월 1일: 협정 초안이 한국 의회의 승인을 위해 제출.

12월 3일: IMF 미셸 캉드쉬 총재가 협상을 완료하기 위해 도착. 미 재무차관 데이비드 립튼이 캉드쉬와 논의한 후, 대선에 출마한 세 명의 후보자의 IMF 구제금융에 대한 지지 없이는 협정은 완료될 수 없을 것이라 공언.

12월 4일: 협정 완본이 IMF 이사회를 통과. 총 570억의 패키지 중 210억을 선 투입하기로 입장을 정리.

12월 5일: 대선 후보 김대중이 IMF 협정에 반대의사 표명. 협정으로부터 올 경제적 파탄과 사회적 충격에 대해 여론에 경고함.

12월 18일: 김대중 후보 당선. IMF 프로그램의 무조건적 수용을 즉각 천명.

12월 22일 미 재무차관 데이비드 립튼이 서울에 도착. 김대중 당선자에게 노동자 대량 해고 요구.

12월 23일: 국회 특별회기 소집. 국회는 IMF 프로그램과 관련된 정부의 4개안을 무기력하게 통과시킴.

12월 24일: 월가의 금융가들이 크리스마스이브 자정에 긴급회의를 가짐. IMF는 기한이 만료된 단기채권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100억 불을 투입하기로 결정.

12월 26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자발적 대처를 천명. 기업에 임금 동결 및 삭감 요구. 이 조치가 불충분 할 경우, 해고가 불가피함을 언급.


월가 금융재벌들의 크리스마스이브 회동

한국 국회는 12월 23일 특별 임시회기를 소집하였다. 570억 달러에 이르는 이 협정에 관한 최종 결정이 다음 날,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에 이루어졌다. 체이스 맨하탄, 뱅크 아메리카, 시티코프, J. P. 모건에서 파견된 월가의 고위 은행가들이 뉴욕의 연방준비은행에서 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에는 또한 골드맨 삭스, 레만 브라더스, 모건 스탠리, 살로먼 스미스 바니를 포함하는 뉴욕의 5대 은행들의 대표자들도 참석하였다. 크리스마스이브 자정 경, 이 회의에서 신호를 보내자, IMF는 단기채권 사태를 봉합하기 위해 한국으로 10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행의 금고는 샅샅이 조사당했고, 채권자와 투기꾼들은 목이 빠지게 강탈할 물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 한국 원화를 상대로 투기를 저질렀던 그 기관들이 IMF 구제 금융으로 또 이득을 보고 있었다. 협잡이었다.


재벌, 무장해제 당하다

IMF 구제 금융은 한국 경제의 주권을 망실 시키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하에서 사실상 식민지배를 강제했다. 실로 하루 밤 만에 한국은 깊은 나락으로 빠져 들었다. 사회적 충격은 실로 엄청났으며, 생활수준은 몰락하다시피 했다. IMF 개혁은 실제 임금을 동결하고 대량 실직을 촉발했다.
시장의 몰락과 함께 원화의 평가절하는 금융 및 산업 두 분야 모두에서 치명적인 연쇄 도산을 불러 일으켰다. 일련의 사태에서 숨겨진 의도는 한국 자본주의의 파괴였다. IMF는 재벌의 해체를 불러 왔다.

[주-제왕의 옷이라는 저서로부터 인용: 재벌이라는 것은 하나의 모회사를 중심으로 뭉쳐진 다종다양한 기업의 복합체를 이르는 말이다. 모회사는 일반적으로 족벌 중심으로 운영이 된다. 1988년, 재계 40대 재벌은 총 671개의 개별 기업을 거느렸다. 현대와 대우가 그 예이다. 이 두 기업은 매우 다양한 제품을 생산했는데, 자동차에서 텔레비전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닿아있었다. 중요한 점은 재벌은 은행을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http://megastories.com/seasia/skorea/chaebol/chaewhat.htm 참조.]

재벌 해체는 자동적으로 외국계 회사와의 전략적 합병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외국 자본에 의한 인수와 통제를 의미했다. 월가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IMF는 12개의 부실 계열사의 매각을 포함하는 대우그룹의 해체를 요구했다. 대우자동차는 선점하는 기업이면 누구나 인수할 수 있을 정도로 부실한 상태였다. 한국 전체의 자동차 부품산업은 심각한 혼란 상태였으며 이는 대량실업과 부품생산 기업의 연쇄도산을 일으켰다.
이와 함께, 한국 최대의 기업 재벌 현대의 채권자들 또한 그룹의 해체를 요구했다. 현대의 해체를 의미했던 소위 스핀 오프(spin off - 모(母)회사가 주주에게 자(子)회사 주식을 분배하는 일)를 통해, 외국자본은 현대의 수익성 높은 기업, 즉 자동차와 조선 산업을 조각내어 적당한 가격으로 나눠먹기를 하려고 했다. 한국의 하이테크 전자산업 및 제조산업 역시 위기에 봉착했다. 서구의 기업들은 한국기업의 자산을 헐값에 매수해 나가며 쇼핑을 해대기 시작했다. 한국 주식시장의 추락을 동반한 원화의 평가절하는 한국 기업자산의 가치를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구조 금융에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거대 기업들이 뛰어들다

미국은 한국의 부실 은행 구제라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제일은행의 최대 주주지분(51%)에 달하는 4억 5천 4백만 달러가 투기적 매점 매수로 유명한 미국계 회사인 뉴 브리지 캐피탈로 송금되었다. 산업 금융에는 전혀 경험도 없고 인지도도 없던 한 캘리포니아 투자 회사가 5,000명의 종업원과 전국 지점망을 갖춘 한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은행 중 하나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뉴 브리지와의 약정서의 조항에 따라, 한국 정부는 제일은행에 소위 풋백옵션(Put Back Option 주가가 공모를 밑돌 경우 주간사가 되사주는 것)을 승인했다. 이로써 제일은행의 새로운 오너(뉴 브리지)는 매각 전 기업 운영이외의 경우에서 파생된 모든 손실에 대해 정부에 보상을 요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 정부는 뉴 브리지가 제일은행을 인수할 때 지불했던 금액의 35배에 달하는 17조 3천억 원의 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이 현대적 노상강도 행위를 통해, 뉴 브리지의 4억 5천 4백만 달러라는 사기성 투자는 무려 150억 9천만 달러라는 돈과 함께 돌아왔다. 더불어, 이 수지맞는 사기 뒤에 숨어 있던 월가의 출자자인 모건 스탠리 딘 위터는 한국 정부와 뉴 브리지로부터 엄청난 커미션을 챙겼다.
어떻게 한국 정부는 이 수천 억원의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교사, 의료 종사자등을 포함한 공무원 대량 해고, 임금 삭감, 사회 보장 프로그램에 대한 고혈을 짜내는 삭감과 수십 수천 억원에 달하는 차관이 그 해답일 것이다.

한국 재경부로부터 돈을 받은 제일은행의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대주주들은 한국의 부실 재벌의 채권자가 되었다. 단 한 푼의 손해도 보지 않고, 전자, 자동차, 중공업, 반도체 등을 포함하는 한국산업의 전반을 그들이 흔들고, 감축하고, 해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기업인수 제안과 재벌에 대한 스핀 오프는 서구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재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운명 또한 새로운 미국 주주들의 손에 맡겨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사유화 정책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것 뿐만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전반적인 금융서비스 산업을 몰락하게 만들었다. 체이스 맨하탄은 굿 머니 시큐리티의 자산 대부분을 매입하였고, 골드만 삭스는 뉴욕생명이 국민생명을 인수하는 동안 국민은행 통제권을 획득했다.
또한 KT와 한국 석유공사를 포함하는 공기업의 사유화도 요구받게 되었다. 한국전력은 경매에 붙여지기도 전에 몇 개의 전기회사로 분할 매각 되도록 요구받았다. 포항제철 역시 완전 사유화의 길을 걸었다. 비슷한 운명이 한중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 소유의 한국중공업과 한국토건은 웨스팅하우스와의 전략적 제휴에 들어가게 되었다.


직접적 식민통치 체계

1945년 시그먼 리(이승만) 정권 하에서 미군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간접적 식민지배 체계는 이로써 종언하고, 한국을 주도하던 경제 엘리트들은 몰락했다. 김대중 정부 주도하의 새로운 체계가 만들어 졌으며 재벌의 해체와 한국 자본주의의 무장해제를 향해 나아갔다. 1997년 12월 IMF 구제금융에 합의함으로써 한국 경제는 중요한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는 또한 북한을 포함하는 한반도 내부 관계에 있어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자유시장 정책을 한반도에 확장시키려는 미국의 계획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통일과 자유시장 경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실현되었던 2000년 6월, IMF 협상단이 한국으로 입국했다. 실로 묘한 타이밍이라 하겠다. 한국에서의 IMF의 영향력은 한국 언론에서 거의 다루어 진 바가 없다. 김대중의 방북을 보면서, 한국인들은 통일을 위한 두 정상 간의 합의에 시선을 고정했다. 다른 경제적 논제들은 부가적인 문제로 미루어져 있었다.
한국민의 시선이 북한으로 향하고 있던 이 시점에, IMF 협상단은 평양 정상회담 이전에 재경부의 이헌재가 사인한 새로운 IMF 협정서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밀하게 계획된 매각에 관한 것이었다. 2000년 6월 협정서는 1997년에 사인된 첫 협정서 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적인 저항이나 논의제기가 없는 한 2003년까지 한국 경제에 대한 IMF의 지배를 지속시킨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해체와 분할은 더욱 세밀하게 명시되었고 시한은 2000년부터 2003년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IMF 협상단은 또 다른 무언가를 등뒤에 감추고 있었다. 미 대사관과의 공조로 IMF 협상단은 평양 정상회담의 경제협력 사안을 책임지고 있던 이헌재 재경부 장관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이헌재는 IMF의 충실한 나팔수였다. 재경부 장관에 임용되기 전 그는 악명 높은 금융감독위원회의 장이었는데, 금감위는 IMF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은 충견이었고 재벌 도산에 책임이 있었다. 평양으로 출발하기 전, 그는 내용을 전달받고 한반도의 경제 협력이라는 가면 뒤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원하고 있었다. 통일 논의 속에 숨어 있는 미국의 저의는 전 한반도의 재식민화였다.


북한의 식민화

평양에서 합의된 한반도 경제협력 프로그램 하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에 투자하기로 했다. 한국 최대의 그룹 현대는 북한에 투자하고 공장을 짓기로 했다.
그러나 현대를 포함한 한국의 재벌들은 미국의 기업들에 급속도로 인수합병 되어갔다. 다시 말해, 한반도 경제협력은 위장된 외국자본이 침투한 결과이고 월가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 사실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미 국무부와 공조하는 이 새로운 재벌들의 미국인 주인들은 궁극적으로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포함한 한반도 경제협력을 지배할 것이다.

김대중의 정책은 북한에 원조와 개발을 통해,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고, 남북한 상호간에 신뢰를 돈독히 하고 한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개방하고 권력을 유지하도록 모든 이들은 북한체제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인상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IMF 및 세계은행과의 협상하는 것을 우리가 돕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이 그들을 무너뜨리는 트로이의 목마가 되기를 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정부가 워싱턴을 대신해 무대를 만든 셈이다. 미국의 군사력을 등 뒤로 고스란히 둔 채, 한국민들이 갈망하는 통일의 약속은 어쩌면 공산주의 북한에 소위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강제할 수 있다.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미국자본의 지배하에서 한반도 전체의 재식민화하고 불모지로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The Recolonization of Korea
Seoul Black Monday. IMF Intervention in Korea


by Michel Chossudovsky


In the late days of November 1997 an IMF team of economists led by trouble-shooter Hubert Neiss was swiftly rushed to Seoul. Its mandate: to negotiate a Mexican-style bail-out with a view to rapidly restoring economic health and stability. An important precedent had been set: the IMF’s bitter economic medicine, routinely imposed on the Third World and Eastern Europe, was to be applied for the first time in an advanced industrial economy.

Washington had carefully set the stage in liaison with the US Embassy in Seoul. Barely a week before the arrival of the IMF mission, President Kim Young Sam had sacked his Finance Minister for having allegedly hindered negotiations with the IMF. A more acceptable individual was appointed on Washington’s instructions. Very convenient: the new negotiator and Finance Minister Mr. Lim Chang-yuel happened to be a former IMF and World Bank official. Also fired at short notice was presidential economic adviser Kim In-ho, for having spurned the IMF option and said Seoul would restore international credibility through its own efforts. (1)

Finance Minister Lim was accustomed to the Washington scene. No sooner had he been appointed, he was whisked off to Washington for negotiations with his former colleague IMF Deputy Managing Director Stanley Fischer.

Seoul Black Monday
The government’s dealings with the IMF had been a closely guarded State secret. On Friday 21st of November, the government officially announced that it would be seeking an IMF bailout. On the following business day, November 24th, Seoul Black Monday, the stock market crumbled to a ten year low over feared IMF austerity measures and expected corporate and bank collapses. Faithfully obeying orders from Washington, Finance Minister Lim had removed all exchange controls from the currency market with the result of enticing further speculative assaults against the won. (2)

Two days later, November 26th, the IMF mission headed by Mr. Hubert Neiss arrived at Seoul’s Kimpo airport. And barely four days later on the 30th, the parties had already agreed on a Preliminary Agreement. The draft text had been prepared at IMF headquarters in Washington prior to the arrival of the mission. The policy solutions had already been decided in consultation with Wall Street and the US Treasury: no analysis or negotiation was deemed necessary.

Arm Twisting in the wake of the Presidential Race
But the deal was not yet wrapped up. The country was on the eve of a presidential election, and the front-runner opposition centre-left candidate Kim Dae jung remained firmly opposed to the IMF bailout agreement. He warned public opinion and accused the outgoing government of organising a massive sell-out of the Korean economy:

’Foreign investors can freely buy our entire financial sector, including 26 banks, 27 securities firms, 12 insurance companies and 21 merchant banks, all of which are listed on the Korean Stock Exchange, for just 5.5 trillion won,’ that is, $3.7 billion. (3)

Political turnaround
Barely two weeks later, upon winning the presidential race, Kim Dae jung had become an unbending supporter of strong economic medicine:

I will boldly open the market. I will make it so that foreign investors will invest with confidence; in a mass rally he confirmed his unbending support for the IMF Pain is necessary for reform and we should take this risk as opportunity. (4)

Succumbing to political pressure, Kim Dae jung, a former dissident, political prisoner and starch opponent of the US backed military regimes of Park Chung Hee and Chun Doo Hwan, had caved in to Wall Street and Washington prior to his formal inauguration as the country’s democratically elected president. In fact Washington had demanded in no uncertain terms that all three candidates in the presidential race commit themselves to adopting the IMF programme.

Enforcing Enabling Legislation through Financial Blackmail
Kim Dae jung had also given a green light to the Korean parliament. A special session of the Legislature was held on the following day, December 23. The four main government motions concerning the IMF Agreement were adopted virtually without debate. (5) Enforced through financial blackmail, legislation had also been approved which stripped the Ministry of Economy and Finance and of its financial regulatory and supervisory functions. South Korea’s Parliament had been transformed into a rubber stamp. Meanwhile, Moody’s Investor Service, the Wall Street credit agency, acting on behalf of US banking interests, had rewarded Korea’s compliance by downgrading ratings for Korean government and corporate bonds, including those of 20 banks, to ’junk bond’ status. (5)

Negotiating a $57 Bailout: Timetable of the Heist
19 November 1997- 24 December 1997

19 November: Outgoing President Kim Young-sam fires Minister of Finance Kang Kyong-shik for hindering negotiations with the IMF. Kang is replaced by Mr. Lim Chang-yuel, a former Executive director of the IMF.

20 November: Finance Minister Lim is rushed off to Washington for talks with his former colleague, IMF Deputy Managing Director Stanley Fischer.

21 November: The Repulbic of Korea (ROK) government formally announces that it will be seeking an Agreement with the IMF. The New Finance Minister is put in charge of negotiations with the IMF.

24 November: Seoul Black Monday. The Seoul stock market crumbles to a ten year low over feared IMF austerity measures and expected corporate and bank collapses.

26 November: The IMF mission arrives in Seoul headed by Mr. Hubert Neiss.

27 November: Shrouded in secrecy, talks between the IMF mission and ROK government officials commence.

30 November: After four days of negotiations, the IMF and the Government agree on a Preliminary Agreement.

1 December: The draft agreement is submitted to the approval of the ROK Cabinet.

3 December: IMF Managing Director Michel Camdessus arrives in Seoul to wrap up the deal. US Undersecretary of the Treasury David Lipton in discussions with Camdessus states that the deal cannot be finalized unless all three presidential candidates give their support to the IMF bailout.

4 December: The final text of the Agreement is ratified by the IMF Executive Board which approves a stand by arrangement for 21 billion dollars out of a total package of 57 billion.

5 December: Presidential candidate Kim Dae-jung expresses his opposition to the IMF Agreement and warns public opinion on its devastating economic and social impacts.

18 December: Kim Dae-jung wins the Presidential election and immediately declares his unconditional support for the IMF programme

22 December: US Under-secretary of the Treasury David Lipton arrives in Seoul. Lipton demands Kim Dae Jung to agree to massive layoffs of workers.

23 December: A special session of the Legislature is called. The Legislature rubber stamps four key government motions regarding the IMF programme.

24 December: Wall Street bankers are called to an emergency meeting on Christmas Eve. At midnight, the IMF agrees to rush 10 billion dollars to Seoul to meet an avalanche of maturing short-term debts.

26 December: Boxing Day: President-elect Kim Dae jung commits himself to tough actions: Companies must freeze or slash wages. If that proves not enough, layoffs will be inevitable.

Wall Street Bankers meet on Christmas Eve.
The Korean Legislature had met in emergency sessions on December 23. The final decision concerning the 57 billion dollar deal took place the following day, on Christmas Eve December 24th, after office hours in New York. Wall Street’s top financiers, from Chase Manhattan, Bank America, Citicorp and J. P. Morgan had been called in for a meeting at the 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 Also at the Christmas Eve venue, were representatives of the big five New York merchant banks including Goldman Sachs, Lehman Brothers, Morgan Stanley and Salomon Smith Barney.(6) And at midnight on Christmas Eve, upon receiving the green light from the banks, the IMF was allowed to rush 10 billion dollars to Seoul to meet the avalanche of maturing short-term debts. (7)

The coffers of Korea’s central Bank had been ransacked. Creditors and speculators were anxiously awaiting to collect the loot. The same institutions which had earlier speculated against the Korean won were cashing in on the IMF bailout money. It was a scam.

Dismantling the Chaebols
The IMF bailout had derogated Korea’s economic sovereignty, establishing a de facto colonial administration under a democratically elected president. It had plunged the country virtually overnight into a deep recession. The social impact was devastating. The standard of living collapsed; the IMF reforms depressed real wages and triggered massive unemployment.

The devaluation of the won, together with the stock market meltdown, generated a deadly chain of bankruptcies affecting both financial and industrial enterprises. The hidden agenda was to destroy Korean capitalism. The IMF program contributed to fracturing the chaebols.

[Note from Emperor’s Clothes?’Chaebol’s are conglomerates of many companies clustered around one holding company. The parent company is usually controlled by one family. In 1988, the 40 top chaebol grouped a total of 671 separate companies. Hyundai and Daewoo are examples. They produce widely differing products, everything from cars to TV sets. Chaebols do not, and this is important, control banks. Summarized and quoted from Yes but what exactly is a chaebol?,
at http://megastories.com/seasia/skorea/chaebol/chaewhat.htm ]

The latter had been invited to establish strategic alliances with foreign firms meaning their eventual takeover and control by foreign capital. Acting directly on behalf of Wall Street, the IMF had demanded the dismantling of the Daewoo Group including the sell-off of the 12 so-called troubled Daewoo affiliate companies. Daewoo Motors was up for grabs. Korea’s entire auto parts industry was in crisis leading to mass layoffs and bankruptcies of auto-parts suppliers. (8)

Meanwhile, the creditors of Korea’s largest business empire, Hyundai, had demanded that group’s break-up. With the so-called spin off, meaning the fracture of Hyundai, foreign capital had been invited in to pick up the pieces, meaning Hyundai’s profitable car and ship building units,at good prices. Korea’s high tech, electronics and manufacturing economy was up for grabs. Western corporations had gone on a shopping spree, buying up industrial assets at rock-bottom prices. The dreviewuation of the won, combined with the slide of the Seoul stock market, had dramatically depressed the dollar value of Korean assets.

California and Texas Tycoons to the Rescue
America had come to the rescue of Korea’s ’troubled banks’. For a meager $454 million, a controlling share (51%) of Korea First Bank (KFB) was transferred to Newbridge Capital Ltd, a US outfit specializing in leveraged buyouts.(9) In one fell swoop, a California-based investment firm, with no visible prior experience in commercial banking, had gained control of one of Korea’s oldest banking institutions with 5,000 employees and a modern network of branch offices through out the country.

Under the terms of its agreement with Newbridge, the ROK government had granted so-called put back options to KFB (Korea First Bank) which entitled the new owners to demand compensation for all losses stemming from non-performing loans made prior to the sale.

What this meant in practice was a total cash injection by the ROK government (in several installments) into the KFB of 17.3 trillion won, an amount equivalent to 35 times the price Newbridge Capital had paid the government in the first place. (10) In a modern form of highway robbery, a totally fictitious investment of 454 million dollars by Newbridge had enabled the new owners to cash in on a 15.9 billion dollar government hand-out. Not bad! And behind this lucrative scam, the Wall Street underwriter Morgan Stanley Dean Witter was also cashing in on fat commissions from both the ROK government and the new American owners of KFB.

And how was the government going to finance this multi-billion dollar handout? Through lower wages, massive layoffs of public employees including teachers and health workers, drastic cuts in social programs as well as billions of dollars of borrowed money.

Financed by the Korean Treasury, the new Texan and Californian owners of KFB had become domestic creditors of Korea’s troubled business conglomerates. Without having risked a single dollar, they now had the power to shake up, downsize or close down entire branches of Korean industry as they see fit, including electronics, automobile production, heavy industry, semiconductors, etc. Most of the business takeover proposals and spin-offs of the chaebols required the direct consent of Western financial interests. The fate of the workers of the chaebols was also in the hands of the new American owners.

The ROK government had not only lost control over the privatization program, it had allowed the entire financial services industry to be broken into. Chase Manhattan had purchased a majority interest in Good Money Securities. Goldman Sachs’ had acquired control of Kookmin Bank while New York Life had taken over its insurance arm Kookmin Life.(11)

The wholesale privatization of major public utilities had also been demanded, including Korea Telecom and Korea Gas. Korea Electric Power Corporation (KEPCO) was to be broken down into several smaller electricity companies prior to being placed on the auction block. Pohang Iron & Steel Corp. (POSCO) was also to become fully privatized. A similar fate awaits Hanjung, the State owned Korea Heavy Industries and Construction Company, slated to enter into a strategic alliance with Westinghouse.

Instating a System of Direct Colonial Rule
The system of indirect colonial rule first instated by the US Military under President Sygman Rhee in 1945 had been disbanded. Korea’s ruling business elites had been crushed. An entirely new system of government under President Kim Dae Jung had been established, geared towards the fracture of the chaebols and the dismantling of Korean capitalism. In other words, the signing of the IMF bailout Agreement in December 1997 marks an important and significant transformation in the structure of the Korean State. It also marks a decisive step in inter-Korean relations and Washington’s design to extend the free market to the entire Korean Peninsula.

Reunification and the Free Market
An IMF negotiating mission was rushed to Seoul in early June 2000, barely a few days before the historic inter-Korean Summit in Pyongyang between President Kim Dae jung and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Chairman Kim Jong il. Careful timing. The IMF’s presence in Seoul was barely noticed by the Korean press. Firmly behind Kim Dae jung, South Koreans had their eyes riveted on the promise of the country’s reunification. Other political issues were shoved to the sideline

Meanwhile backstage, removed from the heat of public debate, the IMF team was quietly putting the finishing touches on a new IMF Agreement to be duly signed by Finance Minister Lee Hun-jai, prior to his departure for the Pyongyang Summit.

It was a carefully planned sell-out: the June 2000 Agreement was more deadly than the first one signed in December 1997. In it, the ROK government renewed the IMF’s stranglehold on the Korean economy until 2003 without the occurence of any form of public debate or discussion. The dismantling and fracturing of South Korean capitalism was carefully outlined, to occur over a three year period, from 2000 to 2003. (12)

But the IMF mission had something else up its sleeve. In liaison with the US Embassy, the IMF mission briefed Finance Minister Lee Hun-jai, who was in charge of the Pyongyang Summit’s economic cooperation agenda. Lee was a faithful crony of the IMF. Prior to assuming the position of Finance Minister, he was in charge of the infamous Financial Supervisory Commission (FSC), the powerful IMF sponsored Watch Dog, responsible for triggering the bankruptcy of the chaebols. Carefully briefed before his departure for Pyongyang, Finance Minister Lee was to uphold American business interests under the disguise of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Washington’s hidden agenda under the reunification process is the eventual recolonization of the entire Korean peninsula.

Colonizing North Korea
Under the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program signed in Pyongyang, the Seoul government committed itself to investing in the North Korea. Hyundai, Korea’s largest conglomerate, was to invest and build factories in the North.

But the Korean chaebols, including Hyundai, are rapidly being taken over by American companies. In other words,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may turn out to be a disguised form of foreign investment and a new window of opportunity for Wall Street. The new American owners of the chaebols in consultation with the US State Department will ultimately be calling the shots on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including major investments in North Korea:

Kim Dae Jung’s strategy is to help Pyongyang with aid and development, tap its cheap labor and build goodwill and infrastructure that are also in South Korea’s interest Everyone has to keep up the pretense that nothing will happen to the North Korean regime, that you can open up and keep your power and we’ll help you make deals with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and World Bank... But ultimately, we hope it does undermine them. It’s the Trojan horse. (13)

The government of Nobel Peace Laureate President Kim Dae jung had set the stage on behalf of Washington. With US military might in the background, the promise of reunification, to which all Koreans aspire, could lead to the imposition of so-called free market reforms on Communist North Korea, a process which would result in the recolonization and impoverishment of the entire Korean peninsula under the dominion of American capital.

Endnotes
Agence France Presse , 19 November 1997.

Willis Witter, Economic Chief sacked in South Korean Debt Crisis; Emergency measures are introduced, Washington Times, 20 November 1997. See also International Monetary Fund, Korea: Request for IMF Standby, includes Letter of Intent and Memorandum on the Economic Programme, see para. 32, p. 44. The text can be consulted at http://www.chosun.com/feature/imfreport.html Quoted in Michael Hudson, Draft for Our World, Our World, Kyoto, 23 December 1997.

National Public Radio, 19 December 1997.

John Burton, Korea bonds reduced to junk status, Financial Times, London, 23 December 1997. P. 3.

Financial Times, 27-28 December 1997, p. 3.

Agence France Presse, Paris, 26 December 1997.

Autoparts makers step up resistance to Foreign Control of Daewoo Motor, Korea Herald, 28, June 2000.

See Michael Zielenziger, A rebounding but unreformed South Korea making investors, officials nervous, Knight Ridder Tribune News Service, 11 June 1999

More Tax Money for KFB, Korea Herald, Seoul, 17 August 2000, p. 1 Struggle to survive will intensify amid M&As, Business Korea, Vol 17, No 2, February 2000, p. 30-36.

Text of Memorandum of Economic and Financial Policies and Letter of Intent, June 14, Ministry of Finance, Seoul, 2000, published in the Republic of Korea Economic Bulletin, June 2000 at http://epic.kdi.re.kr/home/ecobul/indexlist.htm. Also published by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at http://www.imf.org/external/NP/LOI/2000/kor/01/INDEX.HTM. The Memorandum grants management rights to Deutsche Bank over KF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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